미국 여성 작가 트리나 폴러스 Trina Paulus(1931)의 주옥 (珠玉)같은 대표작이다.
*줄무의 애벌래(남): 막연한 꿈(기둥을 올라가는 일)을 쫒는 삶을 살다가...의미없음을 깨닫고 다시 내려온다
*노랑 애벌래(여): 겉모습(애벌래)을 죽여서 참모습(나비)로 변화하는 도전을 먼저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Hope for the Flowers
작은 줄무늬 애벌레(남) striped caterpillar 한 마리가 세상에 나왔다. 자기가 태어난 나뭇잎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나뭇잎들을 차례로 갉아 먹으며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먹는 걸 중단하고 생각했습니다. “삶에는 그저 먹고 자라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 그러고는 삶의 터전이던 나무에서 내려와 보니, 땅에는 나무 위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온갖 신기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 곧바로 익숙함이 찾아왔고, 아무것도 마음의 만족을 주지 못했죠.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과 닮은 다른 애벌레들을 보면서 좋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줄무늬 애벌레가 지난날 그랬던 것처럼) 먹는 일에만 열중하느라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애벌레가 기를 쓰고 하늘 높이 치솟은 커다란 기둥 column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기둥이 아니라 서로 밀치며 올라가려는 애벌레 들의 더미였다. 그들의 행동으로 보아 꼭대기엔 뭔가 굉장한 게 있는 것 같았지만, 구름에 가려 밑에서는 알 수 없었다. 주위 애벌레들에게 물어봐도 누구 하나 알고 있지 못했죠.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 무리 속에 끼어든 줄무늬 애벌레가 본 건 충격 그 자체였다. “서로를 밟고 오르려는 그 속에서, 동료란 하나의 위협이요 장애물이며 발판으로 삼고 위로 올라가는 기회로 이용할 뿐”이었다. 줄무늬 애벌레도 어쩔 수 없이 그곳의 규칙을 받아들여 꽤 높이 올라갔다. 문득문득 불안감이 밀려올 때는 생각하는 것 자체를 애써 포기하면서. 그러다가 올라가는 유일한 통로에서 자기처럼 고민하며 힘겨워하는 노랑 애벌레(여) yellow caterpillar를 만났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줄무늬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순간,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랑 애벌레의 울먹이는 눈빛 속에서 줄무늬 애벌레는 그간의 모든 믿음과 확신이 한순간 산산조각이 나는 경험을한다.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든, 과연 이런 행동을 할 가치가 있을까?” 노랑 애벌레의 시선 속에서 자신이 이런 삶을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노랑 애벌레와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둘은 사랑에 올라가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어느 푸른 풀밭에서 행복하게 지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이제는 서로 포옹하는 일도 드물어졌고, 줄무늬 애벌레는 또다시 삶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 사실을 눈치챈 노랑 애벌레는 애써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설득해보지만, 다시 기둥 올라 가기에 도전하기로 한 줄무늬 애벌레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기둥 위에서 큰 애벌레 세 마 리가 떨어졌다. 두 마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꿈틀거리는 한 마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저 꼭대기 … 보게 될 거야 … 나비들만이 …”라는 말만 남긴 채 그 애벌레도 숨을 거둔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줄무늬 애벌레는 꼭대기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며 짐을 쌌지만, 노랑 애벌레는 줄무늬 애벌레를 사랑함에도 끝내 동행을 거절한다. 그 꼭대기가 예전의 그 숱한 고생을 참아가며 올라 가 볼 만한 곳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고, 확신할 수 없으면서 행동하는 것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줄무늬 애벌레를 기다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
날마다 줄무늬 애벌레의 안부가 궁금해 그 기둥으로 기어갔다가 밤이 되면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 복하던 노랑 애벌레는, 그렇게 기약 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도대체 뭘까?”라는 고민을 시작하면서 그간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어느 날, 늙은 애 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보고 놀란다. “놀라지 마!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하거든.” 나비? 그것은 기둥에서 떨어진 애벌레가 했던 말이었다.
“나비가 뭐죠?” “그건 네가 되어야 할 바로 그 무엇이야. (…) 나비가 없으면 세상에는 꽃도 사라지게 돼.”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될 수 있죠?”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라야 가능하단다.”
노랑 애벌레는 기둥에서 떨어 져 죽은 애벌레들이 생각나 물었다.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단다. 네 ‘겉모습’이 죽어서 사라지는 순간 네 ‘참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거란다. (…) 나를 잘 보거라. 내가 지금 만드는 고치 cocoon는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머무는 곳이야. 다시는 애벌레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너의 눈에도 그리고 너를 보는 다른 애벌레들의 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이미 고치 속에서는 나비가 만들어지는 거란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노랑 애벌레의 머리와 가슴은 온갖 고민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아무리 자신을 봐도 화려한 나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늙은 애벌레의 말만 믿고 하나뿐인 목숨을 걸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노랑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의 고치 바로 옆에 매달려서 실을 뽑아내기 시작합니다. 나비가 되기로 한 것이다.
한편, 이전보다 몸집도 커지고 경험도 쌓인 줄무늬 애벌레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노랑 애벌레에 관한 생각이나 다른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다그치면서, 오로지 꼭대기에 도달하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른 애벌레들이 보기엔 무자비할 정도였다. 마침내 꼭대기에서 빛이 스며들어오는 지점에까지 이르렀 을 때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 높이에서는 모두가 거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여기까지 기어오르는 긴 시간 동안 익힌 기술을 총동원해서야 간신히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줄무늬 애벌레는 자신보다 앞서 꼭대기에 도착한 애벌레들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그리고 유일한 기둥인 줄 알았던 자기들이 목숨 걸고 올라온 기둥과 똑같은 것들이 사방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고 말이죠.
** 왠지 회사 생활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승진을 해도...그 동안 익힌 기술을 총동원해야 간신히 자기 자리(임원 자리 등)를 지킬 수 있는 현실이....그것도 다른 많은 기둥 중 하나에 불과하고...
줄무늬 애벌레는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느낀다. “내가 올라온 이 기둥이 단지 수많은 기둥 중 하나라고?” 마침 그때 한쪽에서 큰 술렁임이 일었났다. 왜 그러나 봤더니 찬란한 노란 날개를 가진 하나의 생명체가 기둥 주위를 날고 있었던 것이다.
“기어 올라오지 않고도 어떻게 이처럼 높은 곳까 지 올 수 있었을까? (…) 이것이 ‘나비’란 말인가?” 줄무늬 애벌레가 머리를 내밀었을 때, 그 나비가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 나비의 눈길은 노랑 애벌레의 것과 흡사했다.
모든 것이 허무해진 줄무늬 애벌레는 방향을 바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기를 쓰고 올라오 는 애벌레들과 마주칠 때마다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돌아 오는 건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이 뭐가 되니?”라는 대답이었다.
순간 줄무늬 애벌레는 깨닫는다.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본능은,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서’ 올라가야 함을.
땅에 도착한 줄무늬 애벌레는 지난날 노랑 애벌레와 지내던 풀밭으로 향했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지쳐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노란 생명체 즉 나비가 날개로 그를 부채질해주고 더듬이로 그를 쓰 다듬고 있었다. 그에게 따라오라는 듯한 나비의 행동에 따라간 곳에는 찢어진 고치가 두 개 매달려 있었다. 나비는 그녀의 머리와 꼬리를 그중 하나에 들이미는 모습을 보여준 후 날아와서 그를 어루만졌다. 나비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 줄무늬 애벌레는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노랑 나비는 기쁘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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