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去者日以疎(거자는 이일소)
『出典』『文選』雜詩中 作者不詳인 古詩十九首中 十四首의 冒頭
떠나는 자는 날이 갈수록 뜨악해 진다란, 죽은 사람은(死者)는 날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잊혀져 간다는 말로 친한 사이였던 자도 일단 멀리 떨어지면 소원(疎遠)해지고 만다는 말이다.
떠나는 자는 날로 뜨악해 지고 오는 자는 날로 친해진다
곽문(郭門)을 나서 바라보면 오직 보이는 것은 언덕과 무덤
고분은 갈아엎어져 전답이 되고 송백(松柏)은 갈리어 땔감이 된다.
백양(白楊)에는 구슬픈 바람이 일고 숙연하여 내마음을 사로잡는다.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파도 돌아갈 길 없으니 어찌할까
「죽은 사람은 잊혀져 갈 뿐, 하나 살아 있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져 간다. 고을의 성문을 나서 교외로 눈을 돌리면 저켠 언덕과 그 아래에는 옛 무덤이 보인다. 게다가 낡은 무덤은 경작되어 밭이 되고 무덤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무덤 주위에 심어진 송백은 잘리어 불 나무가 되어 버렸겠지. 백양의 잎을 스쳐가는 구슬픈 바람소리는 옷깃을 여미게하고 마음 속 깊이 파고 든다. 그럴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고 영락한 몸이라 돌아갈 수가 없다」
고시 19수 중 남녀 간의 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는 12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이와 같은 인생의 고통과 무상을 노래한 것이다.
- 「인생천지간에 홀연히 멀리 떠나가는 나그네와 같다」(第三首)
- 「인생 한 세상이란 홀연히 흩어지는 티끌과 같다」(第四首)
- 「인생은 금석(金石)이 아니다. 어찌 장수할 것을 기대하겠는가」(第十一首)
- 「우주 천지간에 음양은 바뀌고 나이란 아침 이슬과 같다」(第十三首)
- 「인 생 백을 살지 못하면서 천년 살 것을 걱정한다」(第十五首)등을 들 수 있다.
여기 보이는 것은 적구(摘句)에 지나지 않으나 어느 것이나 감정의 발현(發現)이란 점에서 볼 때 다시 없을만큼 아름답다.
고사성어: 乾坤一鄕 (건곤일척)
出典◀ 韓愈의 詩(過鴻溝)
이 말은 한유(韓愈: 자(字)는 퇴지(退之) 號는 창려(昌黎) 768 ~ 824)의 『홍구(鴻溝)를 지나다』라는 시에서 나온 것이다.
홍구(鴻溝)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고노하(賈魯河)로 그 옛날 진(秦)이 멸망하고 아직 천하가 통일되지 않고 있을 때 초나라(楚)의 항우(項羽)와 한(漢)의 유방(劉邦)이 이 곳에 일선을 긋고 천하를 분유(分有)했다. 시(詩)는 당시를 추억한 것이다.
용피호곤할천원(龍疲虎困割川原)
억만창생성명존(億萬蒼生性命存)
수권군왕회마수(誰勸君王回馬首)
진성일척도건곤(眞成一擲睹乾坤)
진나라 말(秦末) 실정(失政)때 진섭(陳涉)등이 기원전 209년 먼저 반기를 들고 이에 호응하여 각지에서 거병하는 자가 꼬리를 물고 일어 났으나 그 중 풍운을 타고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항우였다.
역전(歷戰) 삼년 끝에 드디어 진(秦)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 되어 9군을 점령했으며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고 유방을 비롯한 공이 많았던 사람들을 각각 왕후(王侯)로 봉하여 한 때는 천하를 호령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어쨌든 명목상의 군주인 초의 의제(義帝)을 다음 해 죽여버린 점과 논공행상이 고루지 못했던 점으로 다시천하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즉、전영(田榮) 진여(陳余) 팽월(彭越) 등이계속 제(齊), 조(趙), 양(梁)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더구나 항우(項羽)가 이것을 토벌하고 있는 틈에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땅을 병합해 버렸던 것이다.
무릇 항우가 가장 두려워 하고 있던 것은 유방(劉邦)이고, 유방이 적으로 보고 있던 것은 항우(項羽)였었다.
최초로 관중(關中)을 평정한자가 관중의 왕이 된다는 의제(義帝)의 공약이 무시되고, 관중에 누구보다 먼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항우에 의해 파촉(巴蜀)의 땅으로 봉해진 점이 항우에 대한 유방의 최대 원한이었다.
바야흐로 관중을 수중에 넣은 유방은 우선 항우에게 타의 없음을 알려 놓고 나서, 착착 힘을 길러 후일 관외로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듬 해 봄, 항우는 제(齊)와 연전(連戰, 계속 전쟁)하고 있었으나, 아직 제(齊)를 항복시키지 못하고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지금이라고 생각한 유방은 초의 의제(義帝)를 위해 상(喪)을 치르고 역적 항우를 토벌할 것을 제후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66만의 군사를 이끌고 초로 공격해 들어 가 도읍 팽성을 빼앗아 버렸다.
항우는 이 소식을 듣고 재빨리 되돌아와 팽성 주변에서 한군을 여지없이 때려 부셨으므로 유방은 겨우 목숨만 건져가지고 영양(榮陽)까지 도망쳤으나 적중에 그 아버지와 부인을 남겨 놓는 등 비참한 결과를 가져 왔고 영양에서 다소의 기세를 회복했으나 재차 포위당해 거기서도 겨우 탈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유방은 한신(韓信)이 제(齊)나라를 손에 넣음에 이르러 겨우 세력을 증가시키고, 또 관중에서 병력을 보급받아 여러 차례 초군(楚軍)을 격파시켰으며, 팽월(彭越)도 양(梁)에서 초군을 괴롭혔으므로 항우는 각지에서 전전(轉戰)하게 되었고 게다가 팽월에게 식량 보급로 까지 끊겨 군사는 줄고, 식량은 떨어져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자 마침내 항우는 유방과 화평을 맺고 천하를 양분해서 홍구(鴻溝)에서 서쪽을 한(漢)으로 홍구(鴻溝)에서 동쪽을 초(楚)로하기로 하고 유방의 아버지와 부인을 돌려 보내기로 했다.
때는 한(漢)의 4년 기원전 23년년 이었다. 항우는 약속이 되었으므로 군사를 이끌고 귀국했으며, 유방도 철수키로 하였으나 마침 그것을 본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유방에게 진언했다.
「한(漢)은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으나 초(楚)는 군사가 피로하고 식량도 없읍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초(楚)를 멸망시키려는 것으로 굶주리고 있을 때 없애 버려야 합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유방은 결심을 하고 이듬해 초군(楚軍)을 추격하여 드디어 한신과 팽월 등의 군과 함께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한유(韓愈)는 이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한왕을 도왔던 공업(功業)을 홍구땅에서 회상하며 이것이야 말로 천하를 건 큰 도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일척(一擲)이란 모든 것을 한 번에 내 던진다는 것으로 일척 천금이니 일천 백만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쓰인다.
건곤(乾坤)은 즉(則) 천지(天地)로「일척 건곤을 건다」다시 말해서 「건곤일척(乾坤一擲)」은 천하를 얻느냐 않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대 모험을 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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