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화 無爲而化는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된다는 뜻으로 특히 정치가나 상사들이 억지로 무엇을 하는 것이 백성이나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이 고사성어는 노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무위이화 無爲而化 뜻과 유래
출전 出典 『노자 老子』
무위이화 無爲而化 뜻
無 없을 무 爲 할 위 而 말 이을 이 化 될 화
애써 힘들게 하지 않아도 잘된다는 뜻이다.
무위이화 無爲而化 유래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이 말은 「성인의 덕(德)은 성대하므로 특별히 도덕교육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맡겨 두어도 백성이 감화 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위정자(爲政者)의 성덕이 높은 점이나 그 성대(聖代)를 예찬 할 때 쓰는 말 같다.
그러나 노자(老子)는 말한다.
천하에 행해서는 안된다고 정해진 일(忌諱 기휘, 꺼리어 싫어함)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가난해진다.
백성들에게 편리한 문명의 도구가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나라는 혼란해진다.
인간은 지혜나 기술을 농(弄)하는 일이 교묘해지면 교묘해질수록 사태(事態)는 이상한 양상(樣相)을 띠게 된다.
법률이 정밀(精密)해지면 해질수록 죄인은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말한다.
자신이 아무 일 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자연히 좋아지고 자신이 조용히 있으면 백성은 스스로 바르게 된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依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또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성인(聖 人)은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고, 불언(不言) 의 교(敎)를 행한다.
만물은 일어나서 사양하지 않고 생(生)해서 유(有)하지 않고 일하되 부탁 하지 않는다
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侍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란 만물은 차례차례로 생겨 활동하지만 성인은 만물이 하는대로 맡겨 버린다는 뜻이고 더구나 그런 현상과 활동을 성인이 자기의 공(功)으로서 자랑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侍)」란 뜻이다.
그래서 이 장(章)은 「성인이 무위에 있으면 백성은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다. 더구나 성인은 그것에 결코 지도자인체 간섭을 하지 않고 백성이 하는대로 방임하므로 더욱 더 그 활동은 활발해져 훌륭한 세상이 된다. 성인은 결코 그것을 자기의 공(功)이라고 자랑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고 보면 앞서 「무위이화(無爲而化)」를 「무위로 있으면 사람은 좋아진다」라고 말했으나 「화하다」를「감화된다」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감화된다」라는 상태가 인간 활동이 자유로와지고 활발해진다고 해석한다면 「좋아진다」로 해석해도 상관 없으나 「감화된다」가 도덕적으로 덕화(德化)된다거나 교화(敎化)된다는 것이라면 이「감화된다」란 말은 정당하지 않다.
원래 화(化)란 말은 덕화(德化)나 교화(敎化)나 풍화(風化)라는 경우의 「화(化)인」동시에 「변화(變化)」라든가 「조화(造化)」라든가 「화생(化生)」이니 「화합(化合)」이니 할 때의「화(化)」다.
그리고 아마도 후자의 「화(化)」가 본래의 화(化)」임에 틀림없다. 즉 그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하거나 바뀌어지거나 하는 것이다. 「무위이화(無爲而化)」역시「생성되고 활동하고 변화하는」만물의 상태를 말한 것에 틀림없다.
노자(老子)는 다음과 같은 사용법도 쓰고 있다.
「도(道)는 언제나 무위(無爲)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일체를 하고 있다」 道常無爲而無不爲
「도(道)」란 우주 만물을 지배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원리, 자연의 이법(理法) 상(常)이란 영원이라는 뜻. 그래서 이 경우의「무위(無爲)」는 위정자의 정치적 수단으로서의「무위(無爲)」가 아니고 도(道)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章)에서는 다시 계속해서 「후왕(侯王=나라를 다스리는 인간)이 만약 능히 이(道)를 잘 지키면 만물은 자연히 화하려 한다」(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고 말한다. 군주들에게 자연의 이법(理法)을 따를 것을 권한 것이다.
노자(老子)가 성인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자연의 이법을 체득하고 그것을 따를 수 있는 이상인(理想人)을 가리키고있는 것이다. 도(道) 내지는 무위(無爲)라는 상태에 대해서 노자는 다음과 같은 상징적 표현을 하고 있다.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이를 현빈(玄牝)이라고 한다. 현빈의 문을 천지의 근(根)이라고 한다. 면면(綿綿)히 존재함과 같이 이를 써서 근(勤)하지 않는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제6장).
이것은 도(道)를 여성의 생식기에 비유해서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곡(谷)」은 우묵한 것. 공간 즉「무(無)」가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것이다. 하기야「곡(谷)」은「곡(穀)」에 통하며「양(養)」하다 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곡신(谷神)」은 물(物)을 낳고, 또 기르는 신이라는 것이 된다.
「현빈(玄牝)」이란 불가사의한 암컷, 생식력을 지닌 여성이란 뜻이다. 우묵한 것, 공허한 것, 무(無)한 것, 그것이 천지를 지탱해 주고 있다. 만물을 낳고 활동시켜 준다. 무가 만물을 낳는 것이다. 도(道)의 이 작용(作用)을 억지로 말한다면 「무위(無爲)」다. 무위이기 때문에 만물을 낳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면면히 다함이 없이 낳고 무한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근면하는 것」즉 피로를 모른다.
노자는 춘추시대의 사람이다. 주말(周末)에서 춘추전국시대에 걸쳐서는 농업이 발전하여 경작에 의한 생산력이 급격히 상승한 시기다. 위정자는 상승한 생산력의 근원인 농민과 경지를 보다 많이 획득하고자 전쟁으로 세월을 보내며 망하고 망하게 하고 있었다.
다스림을 받고 있는 농민쪽에서 보면 생산력은 자기들의 힘에 의해 획득한 것이다. 더구나 그 힘은 나날이 풍성해져 자기들의 그 힘에 의해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었다. 위정자가 국민을 상대로 한 관리(管理)나 경영은 도리어 백성들의 활동을 저해했다.
노자는 이런 백성들 편에 서서 자기 시대와 주위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무위이화(無爲而化)」란 백성이 자기들에게 간섭해 오는 위정자에 대해 '아무 소리도 말고 간섭도 하지 말라. 당신네들이 하는 짓이나 말은 우리들이 생산하고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뿐더러 우리들의 생산이 저해되고 약해지는 것은 오히려 당신네들 자신을 약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몸을 위태롭게 만든다. 덮어 놓고 법을 만들고 인정(仁政)을 편다고 하여 끝없는 잔소리를 해서 우리들의 자유를 촉박해서는 안된다. 그냥내버려 두워 달라' 고 하는 백성들의 절망(切望)을 그들을 대신해서 간명하고 날카롭게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말했다.
「하는 자는 이를 해친다」 爲者敗之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위에 함이 있음으로써 다스리기 어렵다」 人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무위이화(無爲而化)」란 말을 사전(辭典)에서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면 노자 본래의 주지(主旨)와는 심히 왜곡된것이라 할 수 있다.
2023.07.31 - [중국고전배우기] - 무용지용 無用之用 뜻과 유래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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