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배워볼 고사성어는 "가정맹어호 가렴주구 각주구검 수주대토"입니다. 가정맹어호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의미 입니다. 각주구검은 배에 표시를 해서 떨어진 칼을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가렴주구와 수주대토의 의미는 아래 글에서 유래와 뜻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맹어호 가렴주구 각주구검 수주대토 뜻과 유래 배우기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뜻과 유래
출처: 예기 『禮記』 단궁편 檀弓篇
수레는 서서히 구르고 있다. 수레 위에는 공자(孔子)가 조용하고, 점잖게 앉아 있다. 공자를 중심으로 몇 사람의 제자의 얼굴도 보인다. 별로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 같았다.
태산(泰山)이 한결 높이 솟아 있고, 근처는 죽은 듯 고요했다. 일행은 문득 여인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그 울음소리는 앞에 있는 묘지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공자는 놀라 정신이 드는 듯 몸을 일으키고 귀를 기울였다. 수레의 속도는 다소 빨라졌다. 생각한대로 한 부인이 길가에 있는 세 개의 허술한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비통하고도 애절해서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자비(慈悲)하신 공자는 그대로 지 나칠 수가 없어 수레위 횡목(橫木)에 몸을 기대어 여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다음 제자인 자로(子路)를 시켜 까닭을 묻게 했다. 「왜、그렇게도 슬프게 우십니까? 거듭해서 슬픈일이 생기신 모양이시군요.」
부인은 놀라 고개를 들었으나 그 다정한 말에 구원을 얻은 듯 했다.
「그렇습니다. 이 근처는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옛날 저의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잡혀먹혔는데 곧 이어 저의 남편이 잡혀먹혀서 세상을 떠나고 이번에는 제 아들이 또 잡혀먹혔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면 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읍니까?」 「아닙니다. 이 곳에 살고 있으면 마구 뜯어가는 세금을 재촉받을 걱정은 없으니까요.」 공자는 이 말을 듣고 깊이 느끼는 것이 있어서 동행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잘 들어두라 『가정(苛政)은 호랑이보다 모질다」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禮記』의 단궁편(檀弓篇)에 나오는데, 공자가 아직 세상에 살아 계시던 춘추시대 말기의 세태(世態)의 일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소위 하극상(下剋上) 시대로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에서도 대부 계손자(季孫子)가 제멋대로 백성을 혹독하게 희생시키고 있었다. 공자는「계자(季子=季孫子)는 주공(周公)보다 부(富)하다」 (季氏富於周公『論語』先進篇)고 하고 계자(季子)의 진무(振舞 八僧舞 천자 앞에서 추는 춤)를 「이것을 그냥 참아 낸다면 무엇을 참지 못하겠는가(孔子謂季氏 八僧舞於庭不可忍也 熟不可忍也)하고 분노했다。
이것이 공자로 하여금 「가정(苛政)은 호랑이보다 사납다」는 말을 하게했다. 가혹한 정치가 끼치는 해악을 맹수와 비교해서 단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 이 이야기의 당판(唐版)이라고 할 문장이 있다. 그것은 당송팔가(唐宋八家)의 한 사람인 유종원(柳宗元)의「뱀을 잡은 자의 설(說)」이다.
이것은 맹사(猛蛇, 독사)의 이야기로 공자의 말을 인용한 다음「아 부렴(賦斂)의 독, 이 뱀보다 더 심한 것이 있음을 모르는가」(余聞而愈悲 孔子曰 苛政猛於虎也 吾嘗疑乎是 今以蔣氏觀之猶鳴呼 熟知賦斂之毒 有甚是蛇者乎)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해독은 이 맹사보다도 더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각주구검 刻舟求劍 수주대토 守株待兎 뜻과 유래
出典』『呂氏春秋』·『韓非子』
옛날(춘추 전국시대) 양자강을 건너는 배 있었다. 언제나 바다 같이 사나와지는 이 큰강도 그 날만은 기름을 흘린 듯이 잔잔해서 타고 있는 사람들도 청명한 날씨에 마음도 흐뭇하게 각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선객 중 한 자루의 칼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초(楚)나라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강 한복판 쯤에 이르렀을 때 그렇게도 소중하게 껴안고 있던 칼을 그만 물에다 빠뜨리고 말았다.
「앗 큰일났다」 사나이는 외치며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다. 칼은 물 속에서 흔들거리며 깊숙히 가라앉고 말았다. 당황한 사나이가 지르는 소리에 선객들은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러자 그는 허리춤에서 주머니 칼을 꺼내 지금 칼이 떨어진 장소의 뱃전에 자국을 내서 표지를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내 칼은 여기서 떨어졌거든. 표지를 해 놓았으니까 이제 안심이네.」 얼마 후 배는 저쪽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곧 표지를 해 놓은 곳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이동되어 있었으므로 칼이 그 곳에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는다(刻舟求劍)」라고 하면서 그 어리석음을 비웃었다(『呂氏春秋』)
또 하나, 「나무구루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守株待兎)라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송나라 사람이 어느 날 부지런히 밭을 갈고있었다.
밭 옆에 큰 나무 그루가 있었는데 그곳에 갑자기 뛰어 나오던 토끼가 그 나무 그루에 부딪쳐 목뼈를 부지르고 죽었다. 덕택으로 농부는 힘 안들이고 저녁 반찬을 얻었다.
그래서그 사나이는 생각했다. "이건 괜찮은데 뭐 비지땀 흘리고 일할 필요가 없군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또 토끼가 뛰어나올 것이고! 그리하여 나무 그루에 부딪쳐 죽는다. 그걸 내가 갖는다. 그렇다. 이 수밖에 없지"
그 후부터 이 사나이는 농사일을 집어 던지고날마다 밭두덩에 앉아 토끼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그 곳에 나타나지 않았고 사나이는 언제까지나 헛탕을 치고 있었다. 때문에 밭은 풀 투성이가 되었다。(『韓非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