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안시는 흰자위 눈으로 옮겨 본다는 뜻으로 바꿔 말해서 남을 차갑게 취급하고 냉대한다는 숨은 뜻을 가지고 있다. 백안시는 완적이라는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백안시 白眼視 뜻과 유래
출전 出典 『진진 晋秦』 완적 阮籍傳
백안시 白眼視 뜻
白 흰 백 眼 눈 안 視 볼 시
흰 눈으로 본다는 뜻으로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의미한다
백안시 白眼視 유래
완적(阮籍)이란 사나이가 있었다. 가만이 있어도 보옥(寶玉)은 눈에 띈는 법, 완적 역시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눈에 띄는 얼굴이다.
완적은 자기 혼자 높은 산에 올라가 만족하고 있는 것 같은 점이 있었고 제 생각대로 행동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기쁜지 슬픈지 언제나 안색은 변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문을 닫아걸고 몇 달이고 나오지 않는다. 산으로 가도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다. 독서력은 발군(拔群)이나 특히 노자·장자 등 소위 도가(道家)의 자연 철학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으며 거문고도 능숙하게 탔는데 그러다가 기분이 고조되면 자기 몸이 어떻게 되는지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사촌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미치광이 취급을 했다.
그러나 정말 미치광이는 아니다. 세상을 근심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배 이상으로 강했다.
당시는 후한(後漢)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환관(宦官)이 세력을 잡아 옳은 말을 하는 학자나 관리를 제멋대로 감금하거나 죽이는 시대였다.
그 결과 황건적(黃巾賊)이 일어났고 그것을 없애자 이번에는 천하가 세 나라(三國)로 나뉘고 그 중의 하나였던 위(魏)나라의 대신인 사마중달(司馬仲達)의 자손이 진(晉)나라를 세우는 등 난세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뭐든지 무력이라는 기풍이 꽉 찬 시대로 인텔리들은 절망하는 암흑시대가 되었다. 완적(阮籍)이 살고 있던 시대는 위(魏)에서 진(晋)으로 움직이려고 하던 시대였다.
인텔리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시사문제(時事問題)에 관해 관리들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자칫 잘못 생각하고 비판을 하면 주목을 당한다. 찬양하면 반정부당에게 이용을 당한다. 결국에 가서는 목숨이 위태로와진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로서 자기 명대로 사는 자는 적었다. 위나라 대신의 집안으로 이름이 알려진 아버지를 가진 완적(阮籍)은 위험을 느꼈다. 그래서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덕택으로 미친놈의 헛소리로 취급되어 위험은 피할 수가 있었다. 그가 바둑을 두고 있을 때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둑상대는 그만 두자고 했으나 완적은 그대로 계속해서 승부를 냈다.
그리하여 두 말이나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피를 한 되나 토하고 슬퍼했다. 어머니를 매장하고 최후의 이별을 할 때, 오직 한 마디 큰일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喪)을 입고 나서는 지독하게 여위어 뼈만 남아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렇듯 세상에서 정해진 형식으로서의 예(禮)는 무시하나 사실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의(禮儀)에 얽매이는 사람을 보면 눈을 옆으로 돌려 흰자위를 보인다. 보기도 싫다는 의사표시다. 혜희(嵆喜)가 어머니의 조상을 왔으나 완적은 형식적인 조상을 싫어해 백안을 보여 쫓아버렸다.
그 말을 들은 그 동생인 혜강(嵆康)은 술과 거문고를 들고 오자 완적은 아주 좋아하며 눈농자를 바로 잡고(黑眼)대했다
백안시 白眼視 속 등장 인물
완적(阮籍)
뉴스 속 백안시 白眼視 사용 예시
- 그는 "우리가 한미동맹을 강화하려고 미국과의 안보 체제를 확실히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분단국으로서 중국 문제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백안시해서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보다 더 정교한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임은정 검사 눈물 “숨쉬기조차 버거워…검찰개혁 촉구하던 절 ‘정치검사’라 백안시”
2023.08.06 - [중국고전배우기] - 고사성어 백아절현 伯牙絶絃 뜻과 유래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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