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날개(1936) 스토리 요약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부모가 가난해 세 살 때 매우 권위적인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살면서, 이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 그의 심리적 갈등과 불안 및 자기학대가 시작되었다. 건축가로 그리고 서양화가로 두 콘테스트에 모두 당선(當選)한 특이한 경력이 있는 이상은,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하면서 특례(特例)로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취직했고, 1932년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숫자를 이용한 언어유희(言語遊戱)의 천재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유독 많은 수(數)가 등장한다. 卿 벼슬 경, 箱 상자 상, 遊 놀 유, 戱 희롱할 희
1933년 3월 폐렴으로 인한 각혈(咯血)이 시작되어 퇴사 후 요양을 위해 간 황해도 백천 온천에서 운명의 여인인 기생 금홍(錦紅)[본명은 ‘연심’]을 만난다. 이후 종로에서 금홍과 동거하면서 다방을 운영했지만, 실패했고 병은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금홍과의 인연도 끝이난다. 그 후 마음을 추슬러 다시 한번 제대 로 살아보고자 1936년 「날개」를 발표하고 그해 6월 새로운 여성과 결혼 후 9월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이듬해 2월 ‘불량선인’으로 체포되자마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4월 일본에서 사망했다. 이 작품은 바로 사업 실패로 금홍에게 얹혀살다가 마음을 추스른 시기의 (1인칭 시점의) 자전적 소설이다.
불령선인: 1910년 일제가 조선인 중 자신들의 명령 및 지도를 따르지 않고 저항 및 반항을 하는 조선인들을 지목하여 만든 용어. 불령(不逞)이라는 한자어는 중국의 고서에도 용례가 나오는 단어로 '불만이나 원한을 품다.', '난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요컨대 불령선인이란 '(일제의 통치에) 원한을 품고 난이나 소요를 일으키는 조선인'이란 의미이다. |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하지만)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회충으로 인한 배앓이] 앓는 뱃속으로 숨으면, (말끔해진) 머릿속에(는) 으레 백지(白紙)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 wit와 패러독스[역설(逆說)] paradox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공할 상식(常識)의 병이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유곽(遊廓)[집창촌(集娼村)]인 33(三十三)[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상징]번지에는 18[육두문자(肉頭文字)]가구가 살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 얹혀살고 있다. 우리 방은 대문간에서 일곱 번째[행운의 숫자 ‘7’을 상징]였는데, 커튼을 사이에 두고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아내의 아랫방으로 가서 창을 열고 햇살을 받는 게 참 좋다. 내 방엔 창문이 없어 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즉 외출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 내 방의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가 되었고, 겨울에도 빈대가 들끓는다. 아내가 조석(朝夕)으로 밥을 넣어주지만, 영양부족으로 몸 곳곳의 뼈가 튀어나와 있는 상태다. 아내는 잠들기 전 내 머리맡에 약간의 돈을 놓고 나를 한참 쳐다보고서는 자기의 방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그런 과정에서 모은 돈을 들고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피곤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았다. 아내와 낯선 남자가 함께 있는 모습을. 내 방으로 가려면 아내의 방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손님이 가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아내가 누워 있는 아랫방으로 가서 (항상 손님들이 그렇게 하듯) 아내에게 제가 지닌 돈을 쥐여주면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줄 때의 쾌감이 이런 것인가? 그래서 손님들은 아내에게, 아내는 내게 돈을 쥐여줬던가?” 이튿날 잠이 깼을 때 나는 아내의 이불 속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내가 나를 그저 밥버러지가 아닌 한 명의 남자로 인정했다는 의미였기에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 후 약간의 돈만 생기면 외출했다가 자정이 넘어 돌아와 그 돈을 아내에게 다시 모두 주기를 반복했고, 아내는 나를 자기의 이불 속에 재워 주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외출했다가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몽땅 맞았다. 오한(惡寒)이 일고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 무작정 집으로 돌아간 나는 역시 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았지만, 오한으로 인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당분간은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날마다 알약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었다. 밤이나 낮이나 너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나는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의 화장대에서 아스피린처럼 생긴 최면약[수면제] 아달린 Adalin을 보았다. “아내는 나를 조금씩 죽이려 한 것일까? 아내가 밉다. 무작정 거리로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는 불현듯 비록 지금은 없지만 내 인공 (人工)의 날개가 돋았었던 겨드랑이가 가려워졌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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