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데카르트)

데카르트 철학 이해하기 2: 방법서설의 4개의 규칙

지적허영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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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뜨는 1596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가 1650년에 스웨덴에서 객사한 17세기 전반의 철학자이다. 20세가 지난 무렵에 고국인 프랑스를 떠나서 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에 여행하고, 30세가 지났을 때부터 프랑스에 서 12년간을 보내고 최후의 반년을 스웨덴에서 지냈다.

 

아버지는 데카르뜨의 교육에 마음을 쓴 나머지 열살 때에 라 프레쉬의 예수회 학원에 입학시켰다. 그 학원장이 바로 데카르뜨의 친척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데카르뜨 자신이 「유럽의 가장 저명한 학교의 하나」라고 자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기대하였던 의향과는 달리 청년 데카르뜨의 심중에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문제가 싹트고 있었다.그것은 우선 부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소년 때에 학교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기대、학문을 하면 인생에 유익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는 기대가 전혀 어긋났다는 것이다.

 

〈행동에 있어서 분명히 보고, 확신을 갖고서 이 세상에 처신하기〉에 배운 학문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하는 크나큰 실망이었다. 《方法敍說Discoure de la Méthode》은 그 이유를 학교에서 배운 학문의 비판(批判)으로서 명백히 말하고 있다.

 

우선 인문학(人文學)에 관해서는 옛날 남의 나라 고사(故事)를 너무 잘 알면 지금의 자기 나라 일들에 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歷史)가 교훈을 준다고 하지만 원래 역사란 것은 사실을 선택하고 사실의 어떤 것만을 중요시하여 써놓은 것이기에 전체의 사태가 실제로 있는 그대로는 표시가 안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학문이 아니고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니 우리의 행위를 다스리는데 쓸모가 없다고 데카르뜨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데카르뜨의 가장큰 불만은 그 도덕론(道德論)에 있다. 그의 말로는 인문학자들이 논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교적(異敎的) 도덕론은 덕(德)을 매우 존중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편이지만 그 덕이란 무엇인가 하는 인식을 주지 못하고 모래위에 세운 누각(樓閣)과도 같이 아무런 토대가 없다. 데카르뜨는 확실한 학문적 인식을 기초로 한 도덕을 요구하지만 인문학으로서는 그의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음에 그러면 인문학에 이어서 3년간 배운 철학 스콜라철학은 어떠했는가? 데카르뜨는 내용적으로 스콜라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이나 자연학(自然學)의 어디가 불만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스콜라철학의 논리가 미비한 것임을 지적한다. 스콜라철학의 논리의 방법으로는 언제나 개연적(蓋然的)인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할 뿐이지, 명증적(明證的)인 진리에 이르지는 못한다. 어떤 것에 관한 진리는 오직 하나 확정적인 것이 있을 따름인데, 스콜라철학은 갑론을박 끝에 다만 그럴듯한 설을 참이라고 할 뿐이다.

 당시의 전래적인 스콜라철학의 체계적인 서술의 방식을 보면、대체로 진위(眞僞)를 묻는 명제(命題)를 제시한 후에, 먼저그것을 거짓[僞]이라고 하는 주장을 내세우고 다음에 반대로 그것을 참(眞)이라고 하는 주장을 들어 마감에 가서는 거짓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답하여 그 명제가 결국은 참이라고 결정한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대학에 있어서의 토론의 형식이기도 하였다.

 

데카르뜨가 느낀 이에 대한 불만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어떤 문제에 관한 토론에 있어서는 상대편을 굴복시키려는 동기가 주가 되지 사태(事態)의 참(眞)을 밝히려고 하는 목표가 망각된다는 사실이다. 이래서는 〈철학이란 모든 것에 관하여 그렇듯이 말함으로써 학문이 옅은 자의 칭찬을 받는 술법을 가르치는〉데 그칠 것이다. 그러나 데까르뜨에게는 그보다 더한 방법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같이 찬성론과 반대론의 대조를 거쳐서 결국 찬성론으로 귀결되는 경우에 양론(兩論)이 의거하여서는 그 전제가 얼마간 고려되어 있기는 하지만 스콜라철학의 방식으로서는 그 전제의 검토가 철저하게 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결론도 명백하게 증명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에 양쪽의 주장의 전제(前提)가 철저하게 음미되어서 그 자신 진위가 명백한 전제에까지 이르렀다면, 당연히 어느 쪽의 주장이 분명히 참[眞]이고 딴것은 분명히 거짓이라고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데까르뜨는 철학이란 그와 같은 명백한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철학의 주장은 엄격하게 명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 데까지 도달하는 방법으로서는 전제의 추구를 철저히 하는 것 즉 분석(分析)〉 전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스콜라철학에 아쉬운 결함이한 바로 이런 철저한 분석이란 것이다.

 

이와 같은 스콜라철학에 대한 비판(批判)은 철학도 수학과 같은 정도로 명증적인 학문이 되어야만 한다는 요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상 데까르뜨는 학원에서 배웠던 학문 중에 수학은 진위가 분명한 참다운 지식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원을 나올 무렵에는 수학에서 새로운 방법을 끌어낼 수 있다는 속셈을 벌써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즉 이제까지 분석이라고 말해온 것이 수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뚜렷한 방법 형식으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유크리드 기하학(幾何學)에 있어서는 작도(作圖) 문제의 해답을 구하는 경우에 구하는 도형(圖形)이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그 조건을 찾는다고 하는〈해석(解析)〉의 방식에서 인정되고, 또 대수학(代數學)에서는 미지수(未知敦)도 기지수(旣知數)와 마찬가지로 보아 방정식을 만들어 이것을 풀어서 미지수를 기지수로 환원한다는 방식 그 자체가 역시〈분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데까르뜨의 〈방법〉은 이런 분석의 방식을 일반화하여 수학뿐만 아니라 자연학과 형이상학의 여러가지 문제에도 적용하고,더 나아가서는 그것으로서 도덕까지도 다스릴 수 있다는 통찰을 하였을 때에 비로소 정식화(定式化)되는 것이지만 그 방법의 형식 자체는 위에서 말한 것으로 다한 셈이다.

 

그리고 기하학의〈해석(解析)〉은 역시나 뒤에〈증명〉을 요하는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분석〉은 종합(綜合)〉에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란 먼저 분석〉에 의해서 명백한 참된 전제(前提=原理)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엔 그 원리로부터〈종합에 의해서 문제가 되어 있는 주장의 이유를 밝혀 증명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방법서설《方法敍說》은 이것을 4개의 규칙으로서 표시하고 있(제2부)

 

첫째로 명증적으로 참(眞)이라고 인정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것

둘째로 문제의 분석을 충분히 하는 것

세째로 분석으로서 도달한 단순한 진리로부터 순서를 쫓아서 복잡한 것에 이르는 것(綜合)

네째로는 문제로 할 것이었는데 안한 점,즉 빠뜨린 점이 없었나 하고 조사해 보는 것 등이다。

 

결국에 있어서 학교를 나와서 세상을 보려고 한 청년데까르뜨는 인문학자의 문학적 인생론을 벌써 신용하지 않았고, 철학자의 형이상학이나 자연학의 논의도 애매하여 진위가 분명치 않은 것으로 보았고, 오직 수학만이 명백하고 확실한 것이라고 인정을 하였고 이런 실망감 속에 깃들인 문제야말로 데까르뜨로 하여금 아버지가 걸었던 기대와는 아주 딴판인, 그리고 세상의 흔한 학자와도 동떨어진 삶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2023.01.29 - [철학(데카르트)] - 데카르드 철학 이해하기3: 데카르트 철학체계의 형성

 

데카르드 철학 이해하기3: 데카르트 철학체계의 형성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데까르뜨의 철학은 네덜란드로 옮겨간 후 수년 동안에 대개 1633년에 이르는 사이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첫째로 데까르뜨의 관심을 끈 것은 원자론(原子論)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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