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데카르트)

데카르트 철학 이해하기 4: 데카르트 철학의 형이상학과 정초

지적허영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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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가을에 네덜란드로 옮긴 후 최초의 9개월 동안에 수행한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결과는 방법서설《方法敍說》 제4부에서 보여주고 있다. 데까르뜨는 이것을 곧 세상에 발표할 생각은 없었고, 소논문의 형식으로 써서 놓아두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자연학을 마무리하는 데에 전심하여 지금으로 말하면 역학(力學)·천문학·화학·생물학·심리학에 이르는 여러 문제를 포괄(包括)하는 세계론《世界

 

論Le Monde》이라는 논문을 1633년에 이르기까지 다 써놓은 것이다. 그 내용의 항목(項目)은 방법서설《方法敍說》제5부에 표시되어 있다.

 

그것은 자연학에 관한 데까르뜨의 주장의 거의 전부가 다 들어 있는 것이어서, 그 후에 또 추가한 것은 거의 없고 있다면 정념(情念)에 관한 소상한 분석과 인체(人體)의 발생 과정에 대한 고찰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방법서설《方法敍說》 제4부에 짤막하게 요약해서 논술된 형이상학은 정신지도의 규칙《精神指導의 規則》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플라톤주의의 생각으로서 일관되어 있다. 거기에 포함된 의론(의견)의 한 가닥을 이끌어내 보자.

 

데까르뜨는 베그만이나 갈릴레이와 같이 자연을 감각에 나타난 모습대로 포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을 넘어서 수학적·기하학적으로 파악하려고 하기에 넓은 의미의 원자론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데까르뜨는 베그만이나 갈릴레이와는 달리, 수학적으로 그려지는 물체 세계가 바로 실재(實在)라는 이유 풀이를 플라톤주의에 기반해서 하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원자론적 세계를 지성(知性)의 직관에 의해서 직접 실재로서 파악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먼저 감각이나 상상(想像)에 의지한 지식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회의(懷疑)인 것이다. 그것을 철저하게 근본적인 방법으로 감행해야 할 것이고, 어떤 인식의 방식에 조금이라도 허위(虛僞)가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인식의 방식 전체를 거짓으로 단정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적 감각이나 외적 감각은 때로는 착각을 갖기 때문에 전체로서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뿐만 아니라 보통 하고 있는 수학적 추리도 때로는 틀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일단 버리지 않으면 아니된다. 버린다는 것거짓으로 단정하는 것 즉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 속에 주어지는 관념이 존재하는 대상을 표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그러므로 이같은 회의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인식은 꿈과 같은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같이 모든 것을 허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은 무엇인가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의심에도 꺾이지 않는 참인 제1원리로서 발견되는 것이다。다 아는 바 데까르뜨를 유명하게 한 「Je pense, donc je suis: cogito ergo sum」이란 구절이 이렇게 보여지는 것은 바로 방법서설《方法敍說》의 이 대목이다.

 

이 원리는 데까르뜨에게 있어서는 수학의 원리보다도 확실한 진리였다. (내가 생각한다는 동작의 관념은 꿈에 보는 산이나 강과 같이 실재성(實在性)을 가지지 않는 관념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존재자를 지시한다. 생각하는 물건의 관념은 생각하는 물건의 존재와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하는 나〉의 존재라는 명증적인 인식에 도달은 하였으나 그것으로서 객관적 자연에 관한 존재의 앎[知]이 참(眞)이라는 이유를 밝히는 근거가 될 수있을까? 데까르뜨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나는 의심하는 가운데 있는 나이기에, 유한(有限)하기 때문에, 그것은 말하자면 세계 전체를 밝게 비치는 빛(光)을 가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나의 존재의 인식에 내포(內包)되어 있는 유한성을 스스로 아는 것이기에, 그는 더 반성하여 살펴본 나머지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자기 스스로가 유한하다고 하는 사실자기 안에 이미 무한한 어떤 완전한 것에 대한 관념(觀念), 즉 말하자면 신(神)의 관념이 들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나는 신의 관념을 갖는다. 그런데 무한 완전한 존재(存在者)의 관념은 결코 유한 불완전한 나 자신이 만들어 내놓을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런고로 나 안의 신의 관념은 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나 안에 놓여진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神)은 존재(存在)한다.

달리 말하면 생각하는 물건으로서〈나는 있다〉는 사실에서〈신은 있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나〉라는 한 점에 있어서 명증적 관념과 존재의 사실이 필연적인 결합을 보였지만 이제 신의 경우에는 그것이 무한한 규모로 내다보이는 것이다. 신을 명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신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신이란 관념은 자기 모순인 것이다. 데까르뜨는 이 점에서 스콜라 철학 초기에 나온 플라톤주의자인 안셀무스의 신의 존재 증명, 소위 존재론적 증명(存在論的證明)을 받아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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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됨으로써 명증적으로 알게된 〈나〉의 존재와 〈신〉의 존재로부터 객관적 세계에 관해서 우리가 갖는 관념도 또한 역시 그것이 명증적인 한 참[眞]이다. 즉 그 관념에 일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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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말한다면 데까르뜨의 철학은 네덜란드로 옮겨간 후 수년 동안에 대개 1633년에 이르는 사이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첫째로 데까르뜨의 관심을 끈 것은 원자론(原子論)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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