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자란 데다가 심한 폐결핵 때문에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있던 김유정은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다가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이유로 중퇴한 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금광(金鑛)에 몰두하기도 했다.하지만 사업이 망한 후 30세 때부터 불과 2년 동안 3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나와 점순이는 17세 동갑내기이다. 우리 가족이 이 동네로 이사와 점순이네 땅을 빌려 소작(小作)한 건 3년 전부터였다.
점순이네가 주인집인 셈이었으므로 늘 굽실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체하던 점순이가 삶은 감자 세 개를 몰래 건네며 먹으라 했지만 거절했다. “느집엔 이런 거 없지?”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고, 또 내가 점순이와 정분(情分)이 나면 부모님이 소작하는 땅마저 빼앗기고 마을에서 쫓겨나리라는 걸 (어린 나이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거절에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났는지, 점순이는 다음날부터 내가 나무를 하고 내려오는 산기슭 바윗돌 틈
노란 동백꽃이 핀 곳에서 덩치 큰 자기네 수탉과 왜소한 우리 수탉을 싸움질시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복수 겸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었다. 그걸 말리고 수탉을 안고 돌아설라치면, 점순이는 들릴 듯 말 듯 뒤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퍼붓곤 했다. 눈물이 흐를 만큼 분해도 시원하게 욕지거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날 피를 흘리며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숨을 헐떡이는 우리 수탉을 내려 보면서도 태연하게 버드나무로 만든 피리를 불고 있는 점순이의 모습에 치가 떨린 나는, 냅다 달려들어 점순이네 수탉을 때려 죽였다. 그러고 나서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어 나도 모르게 서럽게 울었다. 그런 내게 점순이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 내 몸을 덮쳤다. 그리고 우리는 동백꽃 속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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