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수필가, 철학자인 몽테뉴 (Montaigne, Michel Eyquem de)의 생애
1533년 2월 28일에 태어나 1592년 9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59세로 생을 마친 그는 수필의 비조(鼻祖)이다. 남 프랑스의 보르도 근교의 몽테뉴 성(城)에서 출생하여 조부 때 귀족이 된 페리고르 지방의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새 문화와 접촉이 잦았던 부친에게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는 한편 6세까지 아버지 피에르가 초빙한 독일의 학자 홀스타누스로부터 직접 라틴어 교육을 받았다.
보르도 및 툴루즈의 학교에서 법률 및 기타 학과를 배웠고, 뒤에 보르도 시(市) 평의원이 되었다. 덕망이 있는 샤세뉴 가(家)의 딸 프랑소와즈와 결혼, 그 해 부친을 잃고 가산을 상속받았으며 스봉의《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했다. 파리로 나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Étienne de La Boétie)의 유고 발간에 힘썼고, 고향으로 돌아가 《수상록》(1560 ~ 1588)을 쓰기 시작하여 첫 권을 출판했다.
병인 방광결석과 류머티즘의 치료를 겸해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17개월 8일간 여행했으며, 돌아와 보르도 시장(市長)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이 여행은 그의《여행기》에 잘 나타나있다. 종교 전쟁 때에 어려운 직책을 다하였고. 역병 페스트로부터 보르드 시(市)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다시 고향의 서재에서《수상록》 2권에 덧붙여 제3권을 완성하여 신판을 간행했다. 앙리 4세부터 출사(出仕)의 권고를 받았으나 거절 후 성관(城館)에서 조용히 사망했다.
몽테뉴의 명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수상록》이다. 이는《수상록》의 서문에서 〈나 자신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소재는 몽테뉴 자신이며, 사상은 스토아 주의에서 회의주의를 거쳐, 천성에 따라 자연을 즐기는 에피쿠로스적 소크라테스 주의 또는 실증주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 수필의 경향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몽테뉴류의 수필과 베이컨류의 영국 수필로 대별된다. 전자가 인간 내부의 영적 문제를 다룬 명상적·설화적·주관적으로 사색하는 이른바 인포오멀 에세이(輕隨筆)라면、후자는 주로 사회적인 문제를 의론적·경구적(警句的)·객관적으로 귀납하는 이른바 포오멀 에세이(重隨筆)이다. 그렇다면 몽테뉴는 인포오멀 에세이의 비조가 되는 셈이다. 다시 전자의 특색은 개성적인 글이라는 점이고, 자기 표현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인칭으로 서술하고 자신이 알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하여 주로 자기 생활을 그려 낸다. 이른바 자아의 고백 문학으로서 자유로운 기법과 문체로 자기를 적나라하게 그려 낸다. 몽테뉴의 수필은 바로 이에 근거를을 둔 자아의 인생을 고백하는 데 이르고 있다。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이《수상록》은 몽테뉴 자신을 소재로 하고 있다. 3권 중 1권, 2권은 보르도에서 간행했고, 제3권은 가필하여 파리에서 간행했으며, 그 후 결정판으로 보르도 시판(市版)이 완성되었다. 제1권은 〈상이(相異)한 수단으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에서 시작하여 〈연령에 대하여〉에 이르기까지 수상 57장, 제2권은 〈우리들의 행위의 부정에 대하여>를 비롯한 37장으로, 제3권은 13장으로 각각 이루어져 있다.
〈행·불행은 우리들의 생각 여하에 달려 있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등의 유명한 문귀는 제1권에 있으며 제1권 및 2권에는 고사와 인용이 많고, 저자의 의견은 연결 구실밖에 못하나 제3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드러내고 있다. 제3권 제5장에는 대담한 연애론과 성욕이 전개되어 있고 마지막 3장의〈경험에 대하여>에서는 몽테뉴 자신의 인생관이 자연을 즐기고 자연 그대로 사는 현자(賢者)의 경지에 접근하고 있다.
〈내가 그리는 것은 나다. 내 자신이 이 책의 자료이다〉라는 서문은 자신이 《수상록》의 소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내 안을 응시한다. 나는 나만을 상대로한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고안하고 나를 검토하고 나를 음미한다〉(2권 17장)에서는 자기의 내면적 관조를 볼 수 있고, 〈나는 무엇을 아는가〉(2권 12장)란 문귀에서 그의 끊임없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간파할 수 있다. 제3권에는 이러한 회의적 태도에 에피쿠로스적 경향이 현저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의 에세이의 매력은〈영상적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 영상(이미지)은 매우 선명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가령 제1권 제26장에 나오는〈어린이들의 교육에 관해서〉에 나오는장면, 즉 독서를 행로(行路), 지형(地形)에 대해 감각적으로 말한 부분, 또 제1권 제50장에 나오는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의 탐색을 강여울을 찾듯이 묘사한 부분, 혹은 제1권 제10장의 〈서적에 관하여〉에 나오는, 이른바 서적의 인상을 새의 비상에 비유한 부분, 제2권 제31장〈노여움에 관하여>에서 노여움을 바위의 전락으로 비유한 부분, 제3권 제8장의 〈논변의 기술에 관하여〉에 나오는 토론을 무술 시합처럼 말하는 부분 등이 그러하다.
이 밖에도 이와 같은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이것은 추상적인 사상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행위의 영상을 써서 그대로 묘사하는 〈은유〉이다. 독자는 이로부터 그가 얼마만큼 표현에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될 것이다. 이런 표현의 방법은 단순히 하나의 수사적 기교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서 독자에게 직접 연결지워 그 공감적 이해를 보다 성공적으로 전달하려는 하나의 의도적인 기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몽테뉴는 이 기법을 남용하여 표현의 정확성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음을 후기의 가필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몽테뉴는 매우 감각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에세이에서 〈우리들〉〈당신〉〈너〉를 매우 효과적으로 써서 독자를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상대방으로 돌려 사건의 증인으로 쓰곤 했는데, 이것 또한 기법의 하나로 주목된다. 이런 기교적 방법 때문에 독자는 몽테뉴에 대해서 친근한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듯한 인상을 갖게 되고, 그가 말하는 화법에 어느 사이에 휩쓸리고 만다。이것 또한 그의 에세이가 갖는 매력의 하나일 것이다.
또 다른 몽테뉴의 표현상의 기법으로 우리의 흥미를끄는 것중의 하나는〈과장적 표현〉이다. 몽테뉴는 진리, 진실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사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몽테뉴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그로부터 정신적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
수상록 隨想錄의 구성요소
이미 생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몽테뉴는 르네상스의 자유교육 사상에 젖은 아버지의 배려로 어려서부터 라틴어를 모어(母語)로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가 한가한 시간을 라틴 고전을 탐독하며 보냈으므로, 그의 지식의 대부분은 라틴 고전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을 광범하게 읽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 유행하던 작품 경향, 즉 사실의 기록보다는 내적 성찰에 힘쓰는 작품을 즐겼고, 외적 수식보다는 사상적 내포를 존중했으며, 그 때문에 플루타르코스와 세네카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당시 제1인자로 칭송되던 키케로의 문장을 가장 많이 인용했다.
이러한 문장 수업을 거친 그는 에세이를 어떤 사건의 기술보다는 생활 경험에 관한 연상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에세이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자아 탐구의 깊이를 파헤쳐 갔다. 인간의 심리·도덕·종교·논리·방법론 등 모든 정신적 사물에 대해 명상과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제재를 취급해도 그것을 자기에 관해서 자기 속에서 관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갔다. 그런 작업 끝에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인간을 아는 길이고, 또한 그것이 전 인간을 묘사하는 방법임을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적나라한 자기 표현을 묘미로 삼는 고백 문학의 기틀은 이로부터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하나는 모든 행위(동작)는 인간을 드러낸다는 사실이었다. 즉 보잘것 없는 범속한 행동 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아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일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전적으로 관찰로부터 성립된 인간 심리라는 새로운 재료를 문학에 제공한 것이다.
다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인간에게 항구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건이 되어 가는 대로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불안전하기 때문에 자신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모순과 부단의 변태(變態)속에서 진실한 인간을 전개시켜 보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인간(人間相)임을 깨닫고 그로부터 인간의 참 모습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수상록》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초기의 인생관은 바로 죽음의 철학이었다. 죽음 자체를 주관적인 내면에서부터 관조(관찰)하기 시작했고, 다시 그로부터 인생과 죽음의 문제를 명상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에 대한 관찰은 다시 후기에 접어들면서 인생 철학과 밀착되었다. 이 경향은 제3권에서 현저하게 엿볼 수 있다. 그가 인생에 대해 보인 태도는좋건 싫건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가능한 한 행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인생을 체험하고 그것을 관조한 데서 터득한 인생관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는 에세이를 인생 철학에 밀착시켜 갔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바라건 바라지 않건 그것은 시간과 더불어 오기 마련이며、피할 수도 없으니, 문제는 그 죽음이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후기《수상록》에 이르면 우리는 그가 제시한 인생 문제에 부딪치게 되고 몽테뉴의 사색과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고 한말은 뜻깊은 말이다. 인간은 결국 죽음의 존재이고, 그 존재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구애 받지 않은 표현의 자유 속에서 에세이 작업을 피해 갔다. 흔히 수필을〈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는 뜻이라면 몽테뉴의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형식으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하여 덮어놓고 써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무형식 속의 형식의 글〉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얼핏 보기에 몽테뉴의《수상록》은 자유로운 형식 같지만,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며 쓴 글이다. 그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몽테뉴 수상록에 나타난 종교사상
르네상스의 부작용은 결국 종교개혁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작가로서 신앙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기실 어려운 일이었다. 《수상록》에 나타난 사상을 토대로 하여 살피면 그는 신앙문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던것 같다. 가톨릭을 지지한 듯하나 그가 진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않을 수 없다. 그는 교리를 가지고 신교나 구교를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신교의 탁월한 면을 옹호하고 신교에 대한 잔학한 처사를 은연중에 비난하기도 했다. 이것은 당시의 신교에 대한 박해로 보아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단 종교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에 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앙의 갈등을 현실적인 면에서 고찰했다. 그리하여 그의 에세이는 많은 자유 사상가들 즉, 무신론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였다. 그는 이성으로서 신이 있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믿어야 했기 때문에 믿은 것으로 이해했다.
신앙문제에 관해서 설명이 있어야 할〈레이몽스봉의 변소(辯疏)〉에서 그는 신앙의 본질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인간이 불완전하고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자를 믿어야 한다는 것으로 변소되지 않는 법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신의 증명을 신학에 의하지 않고 사색이 자유롭던 고대 철학의 논법을 인용하여 인간적 지식의 불안정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신의 존재를 인정했을 따름이었다. 이처럼 그는 필요에 따라서 신앙을 생각했을 뿐, 신앙에 매력을 느낀 사람은 아니었다.
몽테뉴 수상록의 문학성
그의《수상록》은 결국 그의 철학 사상에 기초를둔 것이었다. 그는 철학하기를 즐겼으나, 그렇다고 철학자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의 기운이 그로 하여금 독서와 사색의 생활을 하게 했다. 그렇다고 그는 사색에 대한 철학적 체계를 세워 보려는 의사는 갖지도 않았다. 그는 우선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검토를 시작해 본 것이다. 방금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사색에 대한 어떤 철학적 체계를 세워 보려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여행을 즐기는 식으로 사물에 대한 사색의 권력을 즐겼고, 그 편력으로부터 얻은 느낌을 사색적 탐구로서 기록해 갔다.
그는 사색의 기초로 이성과 경험을 사용했다. 사리에 맞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도 않았고, 진실을 캐며 경험으로 입증된 것만을 믿으려 했다. 원인과 실태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사색의 실마리를 쫓아 에세이로 표현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성실하게 읽어 줄 것을 호소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생활 태도는 보수적이었지만 그의 사상에는 참신한 관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낡은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써 사물을 이해하고 비판하려했다. 깊은 사색을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그 관찰을 고전 의식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쓴 것이다. 이 작품은 초두부터 내 집안 일이나 사사일을 말해 보는 것밖에 다른 어떤 목적도 있지 않음을 말해 둔다. 이것은 추호도 그대를 위해서나 내 영광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은 나로서는 힘에 겨운 일이다. 나의 일가 권속(眷屬)이나 친구들의 편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오래잖아 그렇게 되겠지만)그들이 내 어느 모습이나 기분의 특징을 몇 가지 이 책에서 찾아보며 나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더 온전하고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하려는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사기 위한 기도였다면 나는 내 자신을 좀 더 잘 장식하고 조심스레 연구해서 내보였을 것이다. 모두들 여기 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별것 아닌나를 보아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 결점들이 여기 있는 그대로 나온다. 터놓고 보여 줄 수 있는 한도에서 천품 그대로의 내 형태를 내놓는다. 만일 내가 아직도 대자연의 태초의 법칙 아래 감미로운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국민 속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기꺼이 내 자신을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으리라는 것을 장담한다. 그러니 독자여!여기서는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자의 재료이다. 이렇게도 경박하고 헛된 일이니, 그대가 한가한 시간을 허비할 거리도 못될 것이다」 이것이 그의 《수상록》의 서문이다.
이 글에 나타나 있듯 소재는 〈나〉이나, 그 나는 주관화된 나이면서 객관적인 나로서 독자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에세이의 성격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①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
② 정서적인 문학
③ 환상적인 문학
④ 이미지의 문학이 그것이다.
①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란 곧 정욕(情慾)을 이지(理知)로 표현하는 문학, 곧 지성적이고 사색적인 문학이라는 뜻이다. ② 정서적인 문학이란 말 그대로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서를 뜻한다. 정서없는 글은 비문학적인 글이 되기 쉽다.정서야말로 모든 문학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정서의 극치는 하나의 미감을 조성하기 마련이다.③ 환상적 문학이란 곧 승화된 세계를 말한다. 에세이는 작자 자신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에세이를 자조(自照)의 문학이라고 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생활 체험은 엄밀히 선택되고, 새로 조직된 것이다. 선택된 체험의 새로운 조직 그것은 실제적인 체험과는 또 다른 체험의세계이다. 그것은 승화된 세계로, 즉 환상적인 세계이다. 모든 예술은 이 환상적인 수법의 소산이기도 하다. 체험의 새로운 조직상에서 오는 환상을 정적인 환상이라고 한다. 에세이는 이 정적인 환상의 세계를 본령으로 한다. ④ 이미지의 문학이란 곧 심상이라든가 영상이라고 하는 이미지화를 말한다. 기실 이미지란 우리 마음의 세계에 한폭의 그림처럼 떠오르는 구체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어떤 사물, 어떤 사실을 독자에게 실감있게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형태를 재현시켜 주고 사실의 현장을 눈으로 보듯 구체적으로 묘사를해야 한다. 이것을 흔히 형상화 즉 이미지화라고말한다. 에세이가 문학적 에세이로서의 가치를 가지려면 이상의 네 성격을 필연적으로 갖추어야한다. 그렇지 않는한 그것은 신변잡기로 타락하기 쉽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몽테뉴의 에세이를 살피면 그의《수상록》은 바로 이에 해당되는 문학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지성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환상적 이미지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의 문학적 형상화라는 점에서도 이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