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서부전선 이상 없다 (1929) 에리히 레마르크

지적허영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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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 Erich M. Remarque(1898~1970)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7~1918.11)에 참전했고, 여러 차례 부상당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독일의 관점에서 이름 붙인) 서부전선 Western front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대치했던 전선으로, 프랑스 북동부부터 벨기에 전역(全域)에 걸친 지역이다.

서부전선에 대한 지도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독일 시골 학교 교사 칸토레크 Kantorek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자기 반 남학생 20명 모두를 강제로 자원입대시킨다. 하지만 후에 칸토레크 역시 징집(徵集)되어 훈련소에서 그간 그가 저지른 악행에 상응할 만큼의 곤욕(困辱)을 치른다. 

 

1. 마음이 따뜻한 파울 보이머 Paul Bäumer(19세)

2. 키는 작지만 머리는 좋은 알베르트 크로프 Albert Kropp

3. 전쟁터까지 교과서를 가져왔을 정도로 배움에 목말라하는 프리드리히 뮐러 Friedrich Müller

4. 여자를 꾀는데 타고난 피터 리어[레어] Peter Leer

5.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는 프란츠 켐머리히 Franz Kemmerich

6. 마지못해 상황에 휩쓸려 입대하게 된 요제프 벰 Joseph Behm. (무인지대에 고립되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전사) 모두

7. 집배원이었던 교관 힘멜슈토스 Himmelstoss의 가학(加)적인 괴롭힘과 엄한 교육에, 훈련소 생활은 어린 그들에게 너무도 힘겨웠다.  모질 학( 학대,  학살)

 

하지만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8. 그곳에서 자물쇠 장수였던 대식가(大食家) 차덴[탸덴] Tjaden과

9. 큰 키에 건장한 체격과는 달리 유머 감각이 뛰어난 하이에 베스트후스 Haie Westhus 같은 좋은 동기들도 만나 끈끈한 전우애(戰友愛)를 통해 고난을 극복해간다. 훈련소 생활 마지막 날 그리고 서부전선으로 배치받기 전날 밤, 그들은 교관 힘멜슈토스에게 사정없이 린치 lynch를 가하는 복수를 감행하고 떠난다.

 

10. 그들이 배치받은 분대(分隊)의 리더는 (구두 수선공이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슈타니슬라우스 카친스키 Stanislaus Katczinsky 일명 카트 Kat(40세)였다.  무리 대( 군대,  제대)

그를 통해 전쟁터에서의 생존법을 차근차근 익힐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축복이었다. 어느 날 켐머리히(5)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한쪽 발을 절단하게 되었다. 그가 곧 죽을 거라고 판단한 군의관들은, 그가 잘 때마다 몰래 그의 물건들을 하나둘씩 가져갔다. 크로프(2)와 켐머리히(5)의 영국제 고급 장화를 탐내고 있었던 뮐러(3) 그리고 보이머(1)가 병문안 갔을 때, 켐머리히(5)는 군의관들의 짓거리를 성토(聲討)하면서 특히 손목시계(제대 후 어머니에게 드릴)를 애타게 찾았다.

 

켐머리히(5)가 죽기 직전 그의 허락을 받아 보이머(1)는 뮐러(3)에게 켐머리히(5)의 장화를 가져다준다.

 

“흘러내리는 창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응급 치료소까지 온 병사도 있고, 입과 아래턱 그리고 얼굴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과다 출혈로 죽지 않으려고 이빨로 팔의 정맥을 두 시간 동안이나 꽉 물고 있던 병사도 있었다.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밤은 찾아오며, 유탄은 쉭쉭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동료들은 죽어 나갔고, 그것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식사 분량까지 차지해 배불 리 먹을 수 있게 된 것에는 행복함까지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 보충병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교육하고, 죽어 나가는 만큼 살아남은 자들은 배불리 먹는 생활이 반복됩니다. 부상자들을 야전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대원들은, 갈 때는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좁았던 트럭이 “올 때는 누울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넓었다.”

 

그러던 중 훈련소의 폭군(暴君) 교관 힘멜슈토스가 보이머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전출(轉出) 온다. 처벌을 무릅쓰고, 보이머와 친구들은 상관인 그를 대놓고 무시하고 반항한다. 그렇다고 힘멜슈토스도 예전처럼 할 수는 없었다. 보이머와 친구들은 이미 수많은 전투를 겪은 경험이 있지만, 그는 실전(實戰)은 처음이었기에. 어느 날 전투 중 참호(塹壕)에서 부상 당한 척하면서 벌벌 떨고 있는 힘멜슈토스를 보이머가 두들겨 패서 끌어낸 적도 있었다.

 

전투 중간중간 이제 20대에 들어선 보이머와 친구들은, 전쟁 후 자신들의 앞날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버림받은 상태에 있고, 나이든 사람들처럼 노련하다. 우리는 거칠고 슬픔에 잠겨 있으며 피상적이다. 나는 우리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린 우리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온 거지. 그럼 대체 어느 쪽의 생각이 옳은거야? (…) 우리나라의 교수들이며 목사들이며 신문들은 우리만 옳다고 말하잖아. 그건 뭐 그렇다고 해두자. 그런데 프랑스의 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신문들도 자기들만이 옳다고 주장하겠지?”

 

사회에서 하던 일이 있던 동료들은 모두 소소한 예전의 생활을 이어가길 바랐지만, 보이머와 친구들은 전투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전쟁이 끝나는 게 두려운 모순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낼 뿐이었다. 그리고 포격과 참호전(塹壕戰), 밀고 밀려 결국엔 제자리인 헛심 공방(攻防), 그 속에서 상대방의 전리품들에 (특히 식량에) 관한 품평회(品評會)와 삶에의 의지, 탈영하는 신병의 모습 등이 슬플 정도로 담담하게 묘사된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 조용한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들이 우리의 친구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어딘가의 탁자에서 어떤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최고 목적은 평상시 같으면 세상의 멸시를 받고, 최고형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드디어 첫 휴가를 받은 보이머는 고향으로 향하지만, 이상하게 낯섦을 느낀다. 동네 이웃들 그리고 하다 못해 부모와의 대화조차 어색하기만 하다. 전쟁터에서는 뭘 느낀다는 것조차 사치(奢侈)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뭘 느꼈냐고 묻고,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만 파리까지 진격할 수 있다며 전략과 전술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일개 병사를 상대로, 전투라고는 치러보지도 않은 사람이! 보이머(1)는 켐머리히(5)의 어머니를 찾아가 켐머리히가 고통 없이 웃으며 죽었다는 거짓말과 함께 그가 어머니에게 선물하려 했던 손목시계를 건네고, 휴가 마지막 날 암에 걸린 어머니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복귀한다.

 

“휴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흔들림이다. 휴가가 끝나면 만사가 훨씬 더 힘들어진다.” 복귀 후 친구들을 만나자 그제야 편안함을 느낀다. 비록 그곳이 전쟁터라도...

 

어느 날 정찰을 나갔다가 프랑스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보이머는 참호에 갇힌다. 그리고 곧 프랑스 병사 한 명도 보이머가 있는 참호로 피해 들어온다. 프랑스 병사를 보자마자 보이머는 자기도 모르게 단검(短劍)으로 그를 찌른다. 그리고 계속되는 포격에 거의 온종일을 자기가 죽인 프랑스 병사와 좁은 참호속에 함께 있던 보이머는 수많은 생각에 잠긴다. 그러던 중 프랑스 병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자 마자, 보이머는 그의 상처를 붕대로 감싸면서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자신은 절대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 었음을 설명한다.

 

“내가 찔러 죽인 것은 적이라는 연상(緣想)이야. 지금에야 자네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되었어. (…) 왜 우리에게 일러 주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자네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쌍한 개란 사실을, 자네들 어머니들도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근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죽음과 고통을 똑같이 두려워하며 똑같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말이야. 어째서 자네가 나의 적이 되었던가!

 

얼마 후 보이머(1)와 크로프(2)는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때까지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 보이머는 다행히 치료와 재활을 통해 회복했지만, 크로프는 (켐머리히처럼) 다리를 절단했다.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평화가 찾아온다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회복한 보이머가 복귀하고 얼마 후 뮐러(3)도 죽으면서, 그가 신고 있던 켐머리히의 장화는 보이머의 것이 되었다. 보이머는 차덴(8)에게 자신이 죽으면 “장화의 다음 주인은 너”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군수물자가 바닥을 드러내던 독일, 연합군의 전차부대를 보며 독일 보병(步兵)들이 느끼는 공포, 존경받던 중대장 베르팅크 Bertinck와 친구 리어(4) 그리고 베테랑 분대장 카친스키(10)의 죽음 ⋯

 

전쟁 3년이 흐르던 가을, 이젠 홀로 생존해 있던 보이머마저도 독가스를 마셔 또다시 야전병원으로 옮겨진다.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황 그리고 이후 세대에게 추월(追越)당할 게 뻔한 자기 세대를 향한 애처로움과 상념(想念) 속에서 1918년 10월 어느 날, 보이머도 전선(戰線)에서 삶의 끈을 놓는다.

 

그리고 그날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음”이라고 기록되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절대적이고 숭고한 이유 따윈 없었다. 독일의 젊은이가 독일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온 것처럼 프랑스의 젊은이들도 똑같은 이유에서 총칼을 들었을 뿐이다.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보낸 어른들은 애국심을 강조했지만, 전쟁이란 결국 정치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이머가 자신이 죽인 적군 병사에게 한 말처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병사는 전쟁이란 괴물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동지이며 다 같은 피해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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