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악령 Demons by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적허영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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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권력의 중앙집권화와 ‘귀족-농노(農奴)’ 제도를 확립한 러시아는, 19세기에 표면적인 황금기를 구가(謳歌)하다가 그에 취해 일으킨 크림전쟁 Crimean War(1853~1856)의 패배로 곪아 있던 내부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흥청망청하는 귀족들과 주린 배를 잡고 죽어가는 농노들. 그 결과 농노해방령이 공표(公表)되지만, 그 역시 ‘귀족-농노’가 ‘지주-소작인’으로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물론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몰입했던 때도 있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혁명을 원하지 않았다. 신앙심이 깊었던 탓에 러시아에 서구의 개인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무신론이 스멀스멀 잠입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러시아의 신도 값싼 보드카 앞에서는 후퇴했다. 백성도 취해 있고, 어머니들도 취해 있 고, 아이들도 취해 있고, 교회는 텅 비어 버렸다.”라고 한탄했을 정도이다. 그러던 차에 1869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혁명가 세르게이 네차예프 Sergey Nechayev(1847~1882)가 배신한 옛 동료 이반 이바 노프 Ivan Ivanov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것을 모티프 motif로 삼아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 이다.  신은 없다며 난무(亂舞)하던 혁명 사상들을, 러시아를 죽음으로 이끄는 ‘악령’으로 묘사한 것이다.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 부유한 미망인 지주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핸섬, 용감, 지적, 세련하지만 음침/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는 바르바라의 아들

  [니콜라이와 관계가 있는 여성들]

   **마리야 레브야드키나: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와 비밀 결혼한 女 >> 탈옥수 페드카에 의해 살해됨

      ***대위 레브야드킨: 마리야의 오빠 >> 탈옥수 페드카에 의해 살해됨

   **다리야 파블로프나: 바르바라 부인이 딸처럼 아끼는 죽은 집사(執事)의 자녀

   **리자베타 투쉬나: 바르바라 부인의 친구 프라스코프야 Praskovya의 딸, 활기차고 아름답고 지적인 女

       ***마브리키 니콜라예비치 : 리자베타와 약혼한 사촌사이 男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바르바라 영지에 머물면서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가정교사로 일함

*표트르 베르호벤스키: 스테판의 아들, 정치적 협잡군

*이반 샤토프: 다리야의 오빠, 고지식하고 열등감이 강한 대학생 >> 표트르에 의해 포섭 후 탈퇴 >> 표트르에 의해 살해됨

*알렉세이 키릴로프: >> 표트르에 의해 포섭됨 >> 샤토프 살해죄를 뒤집어 쓰게됨

*안드레이 렘브케: 도지사

*율리아 렘브케: 도지사의 허영심 많은 부인

*탈옥수 페드카: 스테판의 농노였던 범죄자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Stepan Verkhovensky는 부유한 미망인 지주(地主)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 Varvara Stavrogina의 영지(領地)에 머물면서 그녀의 아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Nikolai Stavrogin의 가정교사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 생활이 20년이 넘어가면서 거의 한 가족처럼 되었다. 스테판에게도 예전의 결혼에서 얻은 아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 Pyotr Verkhovensky가 있었지만, 친척에게 맡겨두고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스테판은 모든 사건의 정점(頂點)에 있는 인물이다.

 

잘생기고 용감하고 지적이며 세련됐지만 가까이하기엔 뭔가 음침하고 꺼림칙한 것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그런 특징들이 버무려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비범한 카리스마 charisma가 된) 스타브로긴은, 어머니가 원하던 근위(近衛) 기병대의 장교가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도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의 속에 웅크리고 있던 어두운 면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결투 중에 살인도 하고, “나는 선악의 구별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아니 원래 선악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면서 11살짜리 여자아이 마트료사 Matryosha를 강간해 자살에 이르게도 했으며, (「백치」(1869)에서도 보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가 강조하는 원초적인 종교적 감수성의 화신(化身)이자 ‘성스러운 바보’ holy fool인) 유로지비 yurodivy로 불리는 마리야 레브야드키나 Marya Lebyadkina와 비밀리에 결혼도 한다. “자선에서 나오는 쾌감은 교만하고 부도덕한 쾌감이며 (…) 자신의 권력과 부에 탐닉하는 쾌감이에요. 자선은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다 타락시키고, 더욱이 목표에 이르지도 못해요, 헐벗음을 배가시킬 뿐이니까요.”

(집안을 관리해주던 죽은 집사(執事)의 자녀들임에도 남들과 똑같이 스테판에게 배우게 하며 키웠기에) 바르바라 부인이 딸처럼 아끼는 다리야 파블로프나 Darya Pavlovna 일명 다샤 Dasha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 프라스코프야 Praskovya의 딸이자 스테판에게서 함께 배웠던 활기차고 아름답고 지적인 리자베타 투쉬나 Lizaveta Nikolaevna Tushina 일명 리자 Liza와도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사실 친척 마브리키 니콜라예비치 Mavriky Nikolaevich와 약혼한 사이임에도 리자베타가 스타브로긴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있었기에 리자베타는 다리야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들의 추문(醜聞)을 모두 알고 있던 바르바라 부인은 스타브로긴을 고향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일단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정리하자는 생각에, 다리야와 스테판의 결혼을 추진한다. 당시 스테판은 아들 표트르가 곧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편지를 받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 스테판이 관리하던 자기의 재산을 찾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테판에게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제 관념이 없던 스테판이 이미 전부 탕진(蕩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 표트르에게 갚기 위해) 바르바라 부인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선, 그녀가 제안하는 결혼을 (소문이 어쨌든 간에) 거절하지 못할 상황이된다. 그러나 어찌 어찌해서 그 결혼은 성사되지 않고, 스타브로긴(바르바라 부인의 아들)과 표트르(스테판의 아들)는 거의 동시에 그곳에 도착한다. (아버지를 닮 아서인지는 몰라도) 겉으로는 사회주의 혁명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한 사상이나 신념 없이 오로지 권력 획득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남을 이용하고 죽이기를 전혀 꺼리지 않는 정치적 협잡꾼인 표트르는, 도지사(道知事) 안드레이 렘브케 Andrey Lembke의 부인이자 허영심으로 가득찬 율리아 렘브케 Julia Lembke의 비위를 맞추면서 그녀의 측근이 된다. 그리고 (그런 지위를 이용해) ‘5 인조’라는 비밀 결사 조직도 만든다. 뭔가 대단한 걸 알고 있는 척하지만 지식과 귀가 얇아 타인의 말에 혹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고지식하고 열등감이 강한 대학생이자 다리야의 오빠인 이반 샤토프 Ivan Shatov와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신의 의지이기에 나도 신의 뜻에서 한 걸음도 벗어 날 수가 없지만, 신이 없다면 내 의지가 모든 것이고 내가 바로 신이 되는 것이며, 그 순간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즉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던 알렉세이 키릴로프 Alexei Kirillov도 표트르에게 포섭된다. 샤토프는 표트르가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아닌 ‘민족’을 강조하면서 조직을 탈퇴한다. 키릴로프의 신(神)이 개인주의라면, 샤토프의 신은 민족[집단] 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신이란 한 민족의 발생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전부를 포함한 종합적인 인격이다. 위대한 민족은 배타적인 독특한 신을 가지고 있으며” 신을 잉태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 바로 러시아 민족이라는 것이다.

 

사실 표트르가 가장 필요로 했던 인물은 스타브로긴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혼란 속에서 구원자[영웅] 를 원하는 대중들의 심리에 편승(便乘)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타브로긴의 비범한 카리스마를 필요로 했다. 스타브로긴은 언젠가 농담 삼아 표트르에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선 살인을 함께 함으로써 (빠져나 갈 수 없는 공범(共犯)이라는)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을 향해 회유와 협박을 하는 동시에 조직에서 탈퇴한 샤토프를 대상으로 스타브로긴의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것도 그가 기획한 도시의 축제가 열린 9월 30일 하룻밤 만에 모든 걸 정리하는 치밀함과 결단력을 보인다. 일단 도시의 시민들이 축제 장소에 모여 있는 동안, 스타브로긴리자베타를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게 한다. 바로 그때쯤, (결혼한 지 2주 만에 헤어졌다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만삭의 아내가 아이를 낳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영혼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샤토프를 공원으로 불러낸 표트르와 5인조는, 샤토프를 살해해 시신을 연못 속에 유기한다. 그리고 새벽녘, 스테판의 농노였다가 스테판이 도박 빚을 갚으려고 팔면서부터 범죄의 길로 들어선 탈옥수 페드카 Fedka the Convict에게 스타브로긴의 숨겨진 아내 마리야와 (비밀이었던 여동생의 결혼 사실을 미끼로 스타브로긴에게 돈을 뜯어내 술값으로 탕진하고 있던) 그녀의 오빠인 대위 레브야드킨 Captain Lebyadkin의 살인을 청부한다. 살인 후에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 집은 물론이고 거리 곳곳에 불을 질렀다. 시민들이 화재와 살인사건으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쯤, 표트르는 스타브로긴과 리자베타가 만나고 있던 곳으로 가서 사고 소식을 전한다. 연적(戀敵)과 다름없던 마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에 두 눈으로 확인하고팠던 리자베타는 약혼자 마브리키와 함께 살인 현장을 찾았다가 흥분한 시민들에 의해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표트르에 의해 살인 교사죄의 누명(陋名) 을 쓰게 된) 스타브로긴의 여자라는 이유로...

 

사실 표트르는 며칠 전 마리야와 레브야드킨 남매의 집을 방문한 후 돌아가는 길에 페드카를 만나 살인을 청부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남매를 죽이겠다는 페드카의 말에, 스타브로긴은 그럴 수 있으면 그러라는 식으로 답했다. 페드카의 능력과 자존심을 건드려 보다 더 확실하게 살인을 하도록 자극하려는 고도의 심리 전술이었다. 더구나 말로는 밥은 먹고 다니냐며 안쓰럽다고 페드카에게 얼마의 돈도 쥐어졌지만, 그 또한 여차여차해서 스타브로긴에게 살인 교사죄 누명을 씌우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었다. 한편 표트르는 샤토프 살해 혐의는 키릴로프에게 씌웠다. 언제나 죽음을 입에 달고 살았고, 샤토프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사상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표트르의 예측대로 모든 걸 덧없게만 여기던 키릴로프는 자신의 무죄를 밝히려는 노력도 없이 곧 자살한다. 물론 마지막 순간엔 살고 싶어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스타브로긴의 행동이다. 아내 마리야의 살해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고, 리자베타의 사망 소식 역시 들었을 법한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채 이미 어딘가로 도망을 가 버렸다. 그리고 날이 밝기 직전, 표트르 역시 도시를 빠져나갔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바르바라 부인은 아예 도시에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스테판이 말없이 도시를 떠났다가 위독한 상태로 시골 한 여관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바르바라 부인이 간호한 지 사흘만에 스테판은 숨을 거뒀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 샤토프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아기를 안고 찾아간 키릴로프의 집에서 샤토프의 아내는 죽어 있는 키릴로프를 발견한다. 그리고 순간 남편의 죽음도 직감한다. 그러고는 거리로 뛰쳐나가 미친 사람처럼 샤토프의 이름을 부르다가 그녀와 아이 모두 결국엔 숨을 거둔다. 스테판의 장례를 마친 바르바라 부인이 도시에 도착할 때쯤, 그 모든 일련의 사건의 배후자가 표트르라는 사실이 (5인조의 한 멤버에 의해) 밝혀진다. 그리고 며칠 후, 다리야 앞으로 스타브로긴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은밀히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서 평생 행복하게 살자는 일종의 청혼 편지였다. 다리야와 바르바라 부인은 부랴부랴 그 길로 곧장 스타브로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만, 그녀들을 맞이한 건 유서와 함께 다락방에서 목을 맨 싸늘한 스타브로긴의 시신이었다. “아무도 벌하지 마라! 나 스스로가 선 택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사건의 배후 조종자인 표트르만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되면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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