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의 소유냐 존재냐 공부하기 4편

지적허영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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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자유(~부터 자유)와 적극적자유(~를 향한 자유)

취득, 소유, 이득은 산업사회에서 사는 개인의 실질적인 불가침의 권리이다. 사유재산이 어떤 경로로 취해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것을 소유함에 그 어떤 구속[의무]도 받지 않는다.

 

법에 저촉하지 않는 한 개인의 권리는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다. 사유재산은 명목상으로는 당연하고 일반화된 것이지만 선사시대, 특히 여타의 생활영역에서 경제가 우선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럽권 외의 문화를 포함한 전체 인류 역사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그것은 통례(通例)라기보다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러 규범은 사회구성원의 특성 또는 사회적 특성을 규정한다. 선진 산업국가의 시민은 소유의 범위를 재산에서 그 밖의 것으로 확대하고 있다. 친구, 애인, 건강, 예술품을 비롯해 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자아에 이르기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인간마저 사물로 변하고, 인간관계는 소유의 특성을 취하게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점은, 19세기 이래 들어선 소유상황의 변천이다. 옛사람들은 간직하기 위해서 사들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인은 버리기 위해서 사들인다. 보존이 아닌 소비가 모토 motto 이다. '취득 → 일시적 소유와 사용 → 폐기처분 → 새로운 취득' , 이것이 일련의 순환과정이며, 구호는 '새것이 아름답다!'이다. 오늘날 소비형태의 가장 현저한 예는 자동차일 것이다. 첫째, 자동차는 내가 애착을 느끼는 구체적 대상이라기보다 나의 신분과 자아의 상징이요, 나의 힘의 연장이다. 자동차를 구매함으로써 나는 사실상 새로운 부분적인 자아를 취득한다. 둘째, 보다 짧은 기간마다 구매하는 경우, 취득에서 오는 기쁨은 그만큼 배가된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뭔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의 상승이요, 그런 체험은 잦을수록 의기양양한 느낌을 더하게 한다. 셋째, 익숙해진 자극은 금세 싫증 나고 무료해지므로 새로운 자극을 향한다. 넷째, 타인을 소유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무수한 사물, 심지어는 감정, 하다못해 건강이나 질병까지도 우리는 소유물로 체험한다. 관념이나 신념 역시 나에게서 분리되어 사유재산이 될 수 있으며, 습관마저 소유물로 체험될 수 있다. 이를테면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의 경우, 그 일정이 조금만 빗나가도 당황하게 된다. 그에게는 그 습관이 소유물로 되어 있어서 그것을 잃게 되면 불안해진다. 소유와 소비를 추구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도 '~로부터의 자유' 라는 소극적 자유를 구가(謳歌)하기는 하지만 '~를 향한 자유' 라는 적극적 자유로의 도약을 이루어내지는 못한다. 제한과 의존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소망 말고는 자기들이 향해야 할 아무런 목표도 추구하지 않은 채 오로지 반항만 한 것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자아를 정의한다

소유지향의 태도는 타인을 배제하며, 나의 재산을 지키려고 고심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에게 다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탐욕적인 태도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죽은 것으로, 나의 힘에 종속된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라는 문장은 주체인 나와 객체인 무엇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 말은 주체나 객체 모두가 영속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양자가 영속적인 것일까?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며 사회적 지위를 잃을 수도 있고, 객체 역시 파괴될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 무엇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진술은 파괴되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전제 한 그릇된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객체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나의 행위는 삶의 과정에서 스쳐 가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라는 진술은 객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빌려 나의 자아를 정의하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인 셈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나 생산적 과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사물로 만든다. 그 관계는 죽은 것이며,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권력에의 의존성을 낳는다

인간은 자기 고유의 진정한 자율적 소망과 관심, 의지를 대부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과 감정적 유형이 그에게 밀어붙이는 뜻과 소망, 감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조절되고 조작당했다는 의식 없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다. 내면적 독립을 성취하는 길만이 자유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자유는 방임이나 자의(恣意)가 아님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자유란 일체의 지배적 원리를 벗어던지는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구조에 맞게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자율적 제약]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발전을 보장해주는 법칙들을 준수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뒷받침하는 권위라면 그 어떤 권위이든 '합리적 권위' 라고 할 수 있다. 소유적 실존양식, 재산과 이윤을 지향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권력에의 욕구, 즉 권력에의 의존성을 낳는다. 지배하려는 상대 생명체의 저항을 깨부수기 위해서 나로서는 폭력이 불가피해지며,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앗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맞설 힘이 필요해진다.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은 남들과 비교해 자신이 우월하다는 데에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에서, 그리고 결국 정복하고 약탈하고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존재적 실존양식에서의 행복은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 것에 있다.

소유지향을 강화시키는 요소: 언어, 포기, 단념

언어는 소유지향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사람과 동일시되는 이름은 그것이 불멸의 본질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보통명사도 물질명사도 이와 똑같은 기능을 한다. 사랑이나 긍지, 증오나 기쁨 같은 말들이 확고한 실체인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사물이란 실제로 우리의 물리적 체계 안에 특정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의 변환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어린이는 성인에 이르기 전에 이른바 '항문기'를 거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고찰했다. 이 시기는 자기의 중심 에너지를 돈이나 물질적 자산뿐만 아니라 감정, 몸짓, 말까지도 소유하고 아끼고 지키려는 성향으로 특징짓는 이른바 항문애적 성격을 만들어낸다. 주목할 측면은 돈[황금]과 똥[쓰레기]을 상징적으로 연관 지은 점으로써, 그는 여러 가지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유지향의 지배적 특성은 완전한 성숙기 이전에 나타나며, 그 특성이 이후의 삶에도 계속 두드러지면 그것은 병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시각에서는 소유와 점유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고 신경증 환자인 셈이다. 따라서 항문애적 성격이 우세한 사회는 병든 사회라는 결론이 나온다.

 

끊임없이 포기 단념에 몰입하는 금욕행위는 어쩌면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소유와 소비를 억제하려는 바로 그 노력을 통하여 끊임없이 소유와 소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무릇 모든 광신적 태도는 다른 충동, 흔히 그것과는 정반대의 충동을 감추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및 정치적 분야에서 제기되는 '절대적 평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오류이다. 그것은 그 주장의 배후에 도사린 시기심이라는 진짜 동기의 역설적 표출이다. 누구도 나보다 더 많이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자기보다 한 푼이라도 더 가졌을 때 느낄 시기심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연막(煙幕)을 치는 셈인 것이다. 물질적 자산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양적으로 똑같이 분배했다고 해서 그것이 평등을 의미할 수는 없다. 평등이란 사회계층에 따라 판이한 생활경험을 가져올 정도로 극도로 극심한 소득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특정한 사물을 소유하고 보존하며, 육성하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육체와 의식주 그리고 우리의 기본적 욕구를 채우기에 필요한 도구들이 이것에 해당한다. 이런 종류의 '기능적 소유'는 그것이 인간의 실존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실존적 소유' 라고 칭할 수도 있다. 실존적[기능적] 소유는 존재와의 갈등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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