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의 소유냐 존재냐 공부하기 7편

지적허영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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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성격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정신적 구조와 사회경제적 구조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를 ‘사회적 성격’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한다.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그 구성원에 대해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 must 일 ‘하고 싶어 하도록’wish 사회적 성격을 형성한다. 동시에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성격사회경제적 구조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성격은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성격 유형을 제공하고, 개인의 성격에 뿌리박힌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도,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는 기능 역시 가지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종교’는 현재 종교로 공인받는 체계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향할 틀과 헌신할 대상을 제공하는, 어떤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사고 및 행동 체계를 포괄하는 말이다. 헌신의 대상은 동물이나 나무일 수도 있고, 황금이나 우상, 보이지 않는 신, 성자(聖者)나 악마 같은 지도자일 수도 있으며, 조상, 국가, 계급, 정당, 돈, 성공일 수도 있다. 이런 넓은 의미로 종교를 정의한다면, 문제는 종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종교이냐이다. 인간을 발달시키고 인간 특유의 힘이 펼쳐지도록 촉진하는 종교이냐, 아니면 인간의 성장을 마비시키는 종교이냐이다. 그러나 흔히 개개인은 자기가 헌신하는 대상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기의 ‘공식적[외면적]’ 종교를 ‘내밀(內密)의’ 진정한 종교와 혼동한다. 예를 들면 권력을 숭배하는 어떤 사람이 공식적으로는 기독교 신도임을 고백했다고 할 때, 그에게 권력에의 믿음이 내밀의 종교이며 그의 공식적 종교는 한낱 이데올로기[허구]에 불과한 셈이다. 사회경제적 구조와 성격 구조 그리고 종교적 구조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순교자와 이교도적 영웅의 차이

여러 견해가 아무리 상반된다고 할지라도, 기독교의 모든 분파는 한 가지 믿음만은 공유한다. 즉 예수에 대한 믿음, 예수야말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던진 구세주라는 믿음이다. 그리스도는 사랑 의 영웅이며 권력 없는 영웅이다. 권세를 부리지도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은 영웅이었다. 기독교의 영웅은 순교자였다. 순교자의 모습은 그리스나 게르만의 영웅들로 대표되는 이교적 영웅상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순교자의 특성을 이루는 범주가 존재하는 것, 주는 것, 더불어 가지는 것이라면, 이교적 영웅의 특성을 이루는 범주는 소유하는 것, 착취, 강탈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영광스러운 정복자와 강도들에 관한 위대한 서사시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역사는 기독교에의 귀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복과 허욕과 탐욕의 역사이다. 우리의 최고 가치는 여전히 남들보다 강하여 이기는 것,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개념은 ‘남자다움’에 대한 우리의 이상(理想)과 일치한다. 또 다른 예로는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의 광적인 민족주의를 들 수 있다. 올림픽은 이교적 영웅들, 즉 승리자, 가장 강한 자, 난관을 헤쳐나오는 능력을 지닌 자를 칭송하는 축제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일진대, 왜 유럽과 미국은 기독교 정신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 것 이라고 솔직히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루터는 가부장적 형태의 기독교를 확립했다

산업 시대의 종교가 발달하도록 길을 터준 최초의 변화는 루터에 의해서 실천된, 교회로부터 모성적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무릇 모든 사회는 부계 중심이나 모계 중심 원칙의 양자택일로 구성되어왔다. 모성애는 착한 행동으로 획득되거나 나쁜 행동으로 상실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성애는 ‘은총과 자비’이다. 이와는 달리 부성애는 조건적이다. 자식의 착한 행동과 성과에 좌우된다. 아버지는 자기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을 사랑하고 그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부성애는 잃을 수도 있지만, 뉘우침과 새로운 복종으로 되찾을 수도 있다. 부성애는 ‘정의(正義)’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모든 개개인이 지닌 은총과 아울러 정의를 원하는 욕구에도 상응한다. 인류의 가장 깊은 열망은 이 두 개의 극 (모성 -부성, 여성-남성, 은총[자비]-정의, 감정-사고, 본성-지성)이 합(合)을 이루는 상태이다. 루터는 도시 중산계급과 세속적 군주들의 뒷받침을 얻어서, 순전히 가부장적인 형태의 기독교를 확립했다. 산업 시대 종교는 참 기독교 정신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을 경제의 노예로,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기계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산업 시대 종교는 새로운 사회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막강한 남성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 불복종에 대한 죄의식의 배양, 만연된 이기심과 상호 적대감으로 인한 인간적 연대감의 소멸 등이다. 산업 시대 종교에서 신성한 것은 노동, 이익, 힘이 다.

 

오늘날 성공은 한 인간이 시장에서 얼마나 유리하게 자신을 파는지, 즉 이기는지에 따라서 또는 그를 싸고 있는 포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따라서, 그가 어떤 환경 출신이며, 어떤 단체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올바른’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지 등에 따라서 좌우된다. 따라서 자신의 삶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상품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시장적 성격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며 만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쪽으로 가는가? 이런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자아 정체성의 위기’는 그 구성원들이 자아를 상실한 도구들로 변해버려서, 대기업 또는 거대한 관료조직에 속해 있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게 된 사실에 근거한다. 시장적 성격은 사랑도 증오도 모른다. 시장적 성격은 좋든 나쁘든 일체의 감정적 요소를 피한다. 감정이란 (미국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1895~1990)의 어휘인) ‘초대형 기계’의 논리에 따라서 기능을 발하는 것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사물은 모조리 교체될 수 있는 것이며, 친구나 애인도 다를 바 없다. 그 결과, 시장적 성격의 소유자는 정서적 문제에서는 눈에 띄게 미숙하다. 이는 아마도 정신적 및 종교적 분야에서 왜 그토록 많은 사기꾼이 성공할 수 있는지, 또한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정치가들이 시장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 호소력을 가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비인간화에 대한 2가지 형태의 저항운동

사회적 성격의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운동은 상반된 두 방향으로부터 일어났다. 즉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낭만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그 진원지이다.

  • 우익 낭만주의자들이 생각한 해결책은 산업체제의 걷잡을 수 없는 진보에 일단 제동을 걸고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예전의 사회질서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 좌익에서 나온 저항은 급진적 휴머니즘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 발달은 멈출 수 없을뿐더러 과거의 사회질서 형태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이 구상한 구제책은 발전을 계속해 소외로부터, 기계의 노예로부터, 비인간화의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실존의 두 가지 다른 방식, 즉 소유와 존재는 새로운 인간 생성에 대한 마르크스적 관념의 핵심을 이룬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가 그대의 삶을 덜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자본론」 3권 (1971))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곧 왜곡되었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자본주의의 경우 소수에게 국한된 소비의 즐거움을 모든 인민에게 똑같이 제공하는 데에 있다”는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1894~1971)의 말은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역시 부르주아적 물질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rnst Schumacher(1911~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1973)에서 말한다. “무한한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 적합하지 않 다. 경제가 삶의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인류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가르쳐 온 바이다. 이 치명적인 질병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 같은 중독 증세와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은박지에 포장되어 있다고 해도, 독(毒)은 어디까지나 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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