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때로 한 남자의 야망과 한 여자의 사랑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유럽을 제패한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그의 위대한 정복 신화 곁에는 항상 한 여인의 이름이 함께했습니다. 바로 그의 첫사랑이자, 황후였으며, 그가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했던 여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 (Joséphine de Beauharnais)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 야망과 운명, 그리고 제국의 비정함이 얽힌 한 편의 대서사시입니다.
우린 진짜 사랑해서 헤어졌어요,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사랑
야망과 매혹의 만남: 장군과 사교계의 여왕
1795년, 프랑스 혁명의 광풍이 휩쓸고 간 파리의 한 살롱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26세의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출신의 촌뜨기 소리를 듣던, 야심 넘치고 거친 젊은 장군이었습니다.
반면 32세의 조제핀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으로,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귀족(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Alexandre de Beauharnais))의 미망인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파리 사교계의 중심에서 우아한 매력을 뽐내던 그녀는 세상 물정에 밝은 여인이었죠.
나폴레옹은 이런 조제핀의 성숙하고 기품있는 모습에 첫눈에 반해 버리는데 그는 이탈리아 원정길에 오르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게 불같은 사랑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I awake full of you. Your image and the memory of last night’s intoxicating pleasures has left no rest to my senses. Sweet, incomparable Josephine, what a strange effect you have on my heart!"
"당신으로 가득 찬 채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모습과 어젯밤의 도취되었던 기쁨의 기억이 내 감각을 가만두지 않는군요. 감미롭고, 비할 데 없는 조제핀, 당신은 어찌하여 내 마음에 이토록 이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오!"
조제핀에게 이 결혼은 처음엔 격변의 시대에 안정을 찾아줄 수단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열정은 결국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796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조세핀, 황후의 자리까지, 영광의 순간들
조제핀과의 결혼 이후, 나폴레옹은 "승리의 여신"을 얻은 듯 연전연승하며 프랑스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쿠데타를 통해 제1통령이 되었고, 마침내 1804년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교황의 손에서 직접 황제의 관을 받아 자신의 머리에 쓴 뒤, 무릎 꿇은 조제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관식의 한 장면이죠.
이렇게 조제핀은 나폴레옹 제국의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제국의 그림자, 비정한 운명의 서막
하지만 영광의 그림자는 길었습니다. 피가 아닌 실력으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에게는 자신의 제국을 물려줄 적법한 후계자가 절실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왕조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아들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제핀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조제핀의 불임"은 두 사람의 사적인 비극을 넘어, 제국의 존속이 걸린 국가적인 문제가 되어갔습니다.
"프랑스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노라": 비극적인 이혼
결국 나폴레옹은 고뇌 끝에 비정한 결단을 내립니다. 1809년 12월, 황궁에서는 역사상 가장 슬픈 이혼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것은 증오로 인한 헤어짐이 아닌,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공식적인 행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식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자리에서 조제핀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I know what this act, commanded by politics and by such great interests, has cost his heart. But both of us glory in the sacrifice which we are making for the good of the country."
"정치와 거대한 이익이 명한 이 행동이 그의 마음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저는 압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조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치르는 이 희생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폴레옹 역시 그녀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그녀가 평생 황후의 칭호와 명예를 유지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야망을 위해 사랑을 버려야 했던 황제의 고뇌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이름, '조제핀'
이혼 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 (Marie Louise)와 재혼하여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얻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조제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했습니다.
1821년, 모든 것을 잃고 남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나폴레옹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의 마지막 순간,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France, l'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 (프랑스, 군대, 군대의 선두, 조제핀.)
프랑스, 군대, 그리고 그의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여인, 조제핀. 그녀는 나폴레옹의 야망을 이끌었던 '운명의 별'이자, 그가 황제라는 자리 때문에 버려야 했던,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던 유일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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