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망타진 一網打盡은 실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고사성어로 누구나 뜻을 알고 있을 것이나 얼마나 정확하게 뜻과 유래를 알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서 핵심은 그물 망(網)을 아는 것이며 그 유래는 북송시대 인종 황제 때 총리인 두연(杜衍)과 관련이 있다.
생각에 보면 물고기를 한번에 모두 잡는 것은 좋은 의미일 수도 있는데 마약사범 일방타진처럼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망타진 一網打盡 뜻과 한자
一 한 일 網 그물 망 打 칠 타 盡 다할 진
한번의 그물로 모든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일망타진 一網打盡 유래와 출처
출처: 『송사 宋史』 인종기 仁宗紀
송조(宋祖) 제4대의 황제를 인종(仁宗)이라고 한다. 당시 북에는 글안(契丹, 계단: 거란족)이 기세를 올리고 있고 남에서는 오랫동안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했는데 송은 건국이래 외정(外征)이 언제나 실패하여 인종 황제의 대외 정책도 주로 이런 나라들을 회유(懷柔: 懷 품을 회 柔 부드러울 유)하는 연약한 외교에 시종했지만 내치(內治)에서는 볼만한 것이 적지 않았다.
황제의 성품이 공검(恭儉: 恭 공손할 공 儉 검소할 검)하여 백성을 사랑했고, 인재를 등용하여 학술을 장려했으므로 군비는 완벽하지 못했으나,현능(賢能)한 인재가 조야에 가득차 나라는 잘 다스려 졌으며 한(漢)의 문제(文帝)와 어깨를 견주는 인군(仁君)이라 일컬어졌었다.
당시의 명신으로서는 한기(韓琦),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修), 사마광(司馬光),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願)등 현재까지 이름이 남아 있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고 인종황제를 보좌했다.
세상에서 이를 경력치세(慶曆之治)라고 하나 훌륭한 사람이 많은 만큼 조의(朝議)에 명론탁설 (名論卓說: 훌륭한 이론이나 학)이 백출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수도 간혹 있었는데 나중에는 신하들이 당파를 만들어 대항하며 양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는다는 현재의 정당정치의 견본 같은 상태였다.
따라서 10년 동안에 내각이 17번이나 바뀌게되는 단명한 내각 시대가 나타나 세상에서는 이것을 경력의당의(慶曆之黨議)라고 칭한다.
그 시절 인종황제 밑에 청렴하고도 강직하기로 소문 두연(杜衍)이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당시의 관습으로서 황제가 장관들하고 의논을 하지 않고 맘대로 은조(恩詔)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고 했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된 두연(杜衍)은 이런 관습이 천하의 정도를 어지럽히는 처사라고 반대를 하여 내강이 있어도 자기 수중에서 묵살을 해버리고 은조(恩詔) 의 조지(詔旨)가 십여 모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되돌려 보냈다.
황제는 어느 날 두연(杜衍)의 반대파인 구양수에게 말했다.
짐이 내강을 해도 두연(杜衍)이 그냥 무시해 버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짐에게 조를 내려달라고 청해 오는 자가 많으나 결국 두연이 깔아 뭉기고 있으니 아무리 내강을 해도 소용이었다고 단념을 시키고 있는데 그 수효는 두연이 무시해 버리는 수효보다 많다.
두연의 이 행동은 성지(聖旨)를 맘대로 거역하는 짓이라고 궁정 내외에서 비난이 컸으며 특히 두연 때문에 성지가 무시된 자들은 두연을 원망하며 그가 실각(失脚)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 두연의 사위인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여 신(神)을 제사하고 손(客)을 향응한 일이 있어나자 「됐다」하고 손뼉을 친 것은 어사(관리의 죄를 규명하는 담당관)의 장관인 왕공진(王拱辰)이었다.
평소부터 두연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터였으므로 이것으로 두연을 모함해 버려야겠다고 소순흠 등을 옥에 잡아가두고 엄하게 조사하여 몇 사람에게 죄를 준후 「일망타진했다」하며 의기양양 해 있었다.
이런 사건 때문에 그렇듯 청렴결백했던 두연도 마침내 겨우 70일로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23.10.01 - [중국고전배우기] - 일거양득 一擧兩得 뜻과 유래가 호랑이와 관련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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