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1927)과 함께 영국 작가 에드워드 포스터 Edward M. Forster(1879~1970)의 대표작이다.
1900년대 초, 상류층 아가씨 루시 허니처치 Lucy Honeychurch는 보수적인 사촌 언니 샬럿 바틀릿 Charlotte Bartlett을 샤프롱∧ chaperone으로 삼아 첫 유럽 여행에나섰다. ∧젊은 여자가 사교장에 나갈 때에 따라가서 보살펴 주는 사람/귀족의 자제와 동행해 외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혀주던 여성 개인 교사
“여자가 직접 뭔가를 해 보겠다고 덤비다가는 처음에는 비난을, 다음에는 경멸을, 마지막으로는 무시를 당하게 된다.”
루시 일행은 그들이 묵은 (영어로는 ‘플로렌스’ Florence인) 이탈리아 피렌체 Firenze의 베르톨리니 펜션 Pension Bertolini의 객실 전망(展望)이 좋지 않아 실망한다. 그녀들이 바랐던 건 아르노강 River Arno이 훤히 보이는 방이었다.
투숙객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그들의 불평을 듣고 있던 에머슨 씨 Mr Emerson는 자기와 (자유로운 영혼이자 정열적인) 아들 조지 에머슨 George Emerson이 묵고 있는 객실이 그녀들이 바라는 바로 그런 방이라면서, 선뜻 방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엔 미심(未審)쩍어 거절하다가 또 다른 투숙객이던 목사 비브 Beebe의 중재로 결국 호의를 받아들인다. 審 살필 심
어느 날, 관광 중 일행과 떨어진 루시는 가까운 곳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는 놀라 기절한다. 마침 그곳에 있던 조지가 기절한 그녀를 부축해 숙소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단둘이 대화도 한다. 며칠 뒤 투숙객들이 함께 야유회를 가게 되었데, 마차를 모는 마부의 사랑 행각에 투숙객들이 언짢아하자 에머슨 씨가 한마디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사려고 하는군요. 그 사람은 우리를 태워다 주기로 약속했고 그 일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영혼까지 참견할 권리는 없죠.”
야유회 도중 비브 목사를 찾는 루시의 말을 (루시의 이탈리아어가 서툴렀던 탓에) 잘못 알아들은 마부가 루시를 비브 목사가 아닌 조지가 있는 곳에 데려다준다.
“우리는 관광객들을 좀 가엾게 여긴답니다. 여행 안내서에 없는 건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사란 오직 ‘구경했다’와 ‘가봤다’, 그리고 다른 데로 이동하는 것밖에 없지요. 그 결과 머릿속에는 도시와 강과 궁전이 뒤죽박죽되어 남을 뿐이고요. 그런 사람들이 눈으로 보면서도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합니다.”
루시를 보자마자 조지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키스한다.
“사방이 봄이에요. 우리는 그걸 즐기러 온 겁니다. 자연의 봄과 사람의 봄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한쪽은 추켜세우면서 다른 한쪽은 도덕이 어쩌고 하며 깎아내립니다. 두 가지 모두 똑같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걸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루시는 당황할 틈도 없이 우연히 조지와의 키스 장면을 목격한 샬럿에게 끌려가고, 루시를 추문(醜聞)에 휩싸이게 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 샬럿은 그날 밤 아무도 몰래 루시를 데리고 귀국해버린다. 귀국 후 루시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대로 전형적인 귀족 세실 바이스 Cecil Vyse와 약혼하고 재미는 없지만 편안하게 생활한다. 醜 추할 추
“기름을 바른 머리, 다리 없는 안경을 걸친 코, 변함없는 정장 차림인 세실에게 여자란 자기가 큰 소리로 책을 읽을 때 조용히 미소 지으며 그 소리를 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에머스 부자(父子)가 근처로 이사 오면서 그 편안함은 깨져버린다. 조지와 루시의 남동생 프레디 Freddy가 금방 친해져서, 루시의 집 정원에서 자주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루시가 정원을 산책할 때 (샬럿도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조지는 또다시 루시에게 갑작스럽게 키스한다. 그러고는 세실과의 파혼(破婚)을 강요한다.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세실은 루시의 좋은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루시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된다며 차갑게 거절하긴 했지만, 그 순간부터 루시는 혼란 속에 빠져든다. 약혼한 사람이 있는데 다른 남자가 마음에 들어오려 하는 것이 사회 통념과 규범에 어긋난다는 죄책감이 가장 컸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루시는 세실에게도 파혼을 선언한다.
“나는 보호받기 싫어요. 어떤 게 여자다운건지 옳은 게 뭔지 나 자신이 판단하고 싶어요. 보호받는다는 건 나한테 모욕이에요. 내가 왜 진실과 바로 만나지 못하고 당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해야 하죠? 그게 여자의 자리라고요? 당신은 내 어머니를 한심하게 여기죠? 어머니가 인습(因襲)에 얽매이고 푸딩 같은 (즉, 음식 같은 천박한) 것에 안달한다고요. 하지만 기가 막혀! 인습에 얽매인 건 세실 바로 당신이에요!” 襲 엄습할 습
그리고는 갑자기 작가가 개입해서 상황을 묘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루시가 조지를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의 입장에 선다면 그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정리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살기는 혼란스러우며, 우리는 언제나 피상적인 말들로 내면의 욕망을 가리고 덮으려고 한다. 그녀는 세실을 사랑했다. 조지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누가 그녀에게 두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줄 것인가?” “매번 그렇듯이 세실은 루시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의 무기는 ‘매력’이지 ‘논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를 잃을 처지에 놓이자 세실은 그녀가 매 순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을. 그것은 약혼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잔인한 아이러니였지만, 그녀는 관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에게서 최상의 것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두 배 이상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체념(諦念)한 조지는 루시를 잊기 위해 이사를 준비하고, 그와 동시에 파혼은 했지만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사회적 규범을 모두 내려놓지 못한 탓에) 조지와의 사랑도 인정 할 수 없었던 루시 역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스 여행을 계획한다. 諦 살필 체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에머슨 씨와의 대화를 통해, 루시는 자신이 괴로웠던 건 조지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아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지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신혼여행으로 그 둘이 처음 만난 피렌체를 다시 찾은 루시와 조지는, 전망 좋은 방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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