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던 러시아 작가 레프[레오] 톨스토이 Lev[Leo] Tolstoy(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1877) 및 「부 활」(1899)과 더불어 3대 장편 소설 중 하나이다. 나폴레옹 전쟁 Napoleonic Wars(1803~1815) 중 러시아 침공[원정](1812~1813)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엔 베주호프[베주코프] 백작가(家) The Count Bezukhovs⋅볼콘스키 공작가(家) The Prince Bolkonskys⋅로스토프 백작가(家) The Count Rostovs⋅쿠라긴 공작가(家) The Prince Kuragins⋅드루베츠코이 공작가(家) The Prince Drubetskoys 등 다섯 가문의 인물 외에도 수백 명이 등장해 부패한 귀족사회의 모습을 폭로하면서, 전쟁⋅애국심⋅사랑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을 제시한다.
*피에르 베주호프(일명 표트르): 외국에서 유학 중 학업을 마치지 않고 (유산을 받기위해) 러시아로 돌아옴
*바실리 쿠라긴: 피에르 베주호프의 재산을 노림, 막내딸 엘렌을 페에르와 결혼시킴
*안드레이 볼콘스키: 삶 자체를 따분해 함 >> 전쟁참여(출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
*니콜라이 로스토프(일명 니콜렌카): 경 기병(군인) >> 전쟁참여(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으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 야심 남 >> 전쟁참여(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
전쟁 중에도 사교모임을 지속하던 무개념의 러시아 상류사회. 애국심과 국가 수호(守護)는 천한 국민의 몫일 뿐, 귀족들의 모든 관심은 자기들의 재산과 지위의 안녕(安寧)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사교계의 파티장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1805년 봄, 방탕한 생활 끝에 오늘 내일하고 있는 키릴 베주호프 Kirill Bezukhov의 수십 명의 사생아(私 生兒) 중 한 명으로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피에르 베주호프 Pierre Bezukhov 일명 표트르 Pyotr가 학업을 마치지도 않은 채 러시아로 돌아옵니다. 운 좋게 키릴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리숙한 데다가 사교계 생활에도 서툴렀던 피에르였지만, 엄청난 유산 덕에 일약 사교계의 주요 인사(人 士)가 된다. 그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 중엔 돈에 환장한 바실리 쿠라긴 Vasily Kuragin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자녀 중 제대로 된 인간은 없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큰아들 이폴리트 쿠라긴Ippolit Kuragin은 여자만 밝히는 가장 개차반이었고, 둘째 아들 아나톨[아나톨리] 쿠라긴 Anatole Kuragin도 도덕관념이라고는 전혀 없는 망나니였으며, 막내딸 엘렌 Hélène 일명 엘레나 Elena는 미모(美貌)를 무기 로 여기저기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추문(醜聞)만 뿌리고 다녔다. 그럼에도 계획대로 운 좋게 바실리는 엘렌을 피에르와 결혼시키는데 성공한다.
임박(臨迫)해 오는 전쟁은, 사교계든 결혼 생활이든 삶 자체를 따분해하던 안드레이 볼콘스키 Andrei Bolkonsky와 경기병(輕騎兵) light cavalry인 니콜라이 로스토프 Nikolai Rostov 일명 니콜렌카 Nikolenka 그리고 야심(野心)으로 똘똘 뭉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 Boris Drubetskoy 모두에게는 일생 일대의 기회였다. 물론 이유는 서로 달랐다. (나폴레옹을 존경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안드레이는 출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 니콜라이는 비록 겁은 많았지만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으로, 러시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던 보리스는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 참전한다.
1805년 7월, 지혜와 좋은 품성을 지녔지만 못생긴 얼굴에 눈만 커서 자존감이 낮고 내성적인 여동생 마리아 Maria와 함께 자신의 영지(領地)에 틀어박혀 생활하고 있는 (겉으로는 엄하고 괴팍하고 차가워 보여도 가슴 속은 그렇지 않은) 아버지 니콜라이 볼콘스키 Nikolai Bolkonsky에게 만삭(滿朔)의 아내 리제 [리자] Lise를 맡긴 안드레이는 러시아 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 Mikhail Kutuzov(1745~1813) 장군의 부관(副棺)으로, 니콜라이는 경비병으로, 보리스는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바실리를 통해 황제의 호위 부대원이 되어 참전한다.
적진을 향해 뛰어들다가 큰 부상(負傷)을 입고 쓰러져 하늘을 쳐다본 순간, (귀신에라도 홀린 듯) 안드레이는 그때까지 자기가 추구하던 세속적인 가치들이 모두 보잘것없고 헛되다는 (나폴레옹조차 전쟁에 미친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머리 위에는 맑지는 않지만 측량할 수 없이 드높은 하늘과 하늘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잿빛 구름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 할까? (…) 우리가 달리고 외치고 싸우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 왜 나는 전에는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영지(領地)에서 조용히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밤, 아내는 아들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니콜라이와 보리스에게 전쟁은, 현장에 있던 안드레이와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 핵심 장면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강화조약 체결 현장이다.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전투를 수행하던 중 우연히 자리하게 된 강화조약의 현장에서 니콜라이가 자신의 신념과는 너무도 다르게 전쟁을 대하는 (서로 존중하고 웃으며 우호적인 분위기의) 양국 정치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면,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권력이 되는 상류사회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기에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서 호위대의 일원이 된 보리스는 곧 있으면 강화조약이 체결되리라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전후(戰後) 러시아 사회에서 권력과 출세의 도약대 가 될 거라는 판단에 (또다시 인맥과 뇌물을 총동원해서) 강화조약 체결 현장에 있게 된 것이다. 강화조약 체결 후 보리스는 출세 가도(街道)를 달렸고, 프랑스 군대의 공격에 싸워 보지도 못하고 실신(失神)할 정도로 허약했지만 강화조약 체결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훈장을 받고 특진(特進)도 한 니콜라이는 속으로는 겸연쩍어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한편 아니나 다를까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추문을 뿌리고 다니는 아내 엘렌에게 별거를 통보하면서부터 피에르는 삶과 죽음⋅선과 악 등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하다가, 우연히 (인도주 의(人道主義)적 박애주의(博愛主義)를 표방하는 ‘자유 석공 모임’인) 프리메이슨리 Freemasonry에 빠지게 된다.
1809년 봄 러시아에 분 개혁의 바람에 동참해서 일하던 중 업무상 니콜라이의 아버지 일리야 로스토프 Ilya Rostov의 집을 방문하게 된 안드레이는, 그곳에서 니콜라이의 여동생 나타샤 Natasha 일명 나탈리야 Natalya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사랑의 감정에 가슴이 다시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한거다. 미모는 뛰어나지 못했어도 활기차고 낭만적이며 생명력이 가득찬 뛰어난 가수 겸 무용수였던 나타샤는, 이전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리스와 사귀었지만 보리스가 나타샤를 버리고 돈 많은 여인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보리스는 피에르의 아내 엘렌과도 좋지 못 한 소문이 있었다. 그해 말, 한 사교모임에서 다시 만난 나타샤와 안드레이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안드레이의 아버지 니콜라이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들이 찾은 타협점은, 일단 약혼은 하되 결혼은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1년 뒤에 하는 거였다. 그게 뭐 그리 괴로운 일이라고 안드레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사이 나타샤는 (바실리 쿠라긴의 둘째 아들이자 유부남이던) 아나톨의 꼬임에 넘어가 함께 도망가려다 발각된다. 그 때문에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약혼은 자연스럽게 깨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안드레이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인다. 나타샤는 곧 아나톨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때쯤 평소처럼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엘렌은 낙태를 위해 먹은 약이 잘못되어 비참한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한다.
1812년 6월,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다시 침공하자 안드레이는 (마치 전쟁에 굶주린 사람처럼) 즉각 참전했다가 역시 중상을 입는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있던 야전병원에는, 한쪽 다리를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나톨도 있었다. 안드레이는 그런 아나톨을 보면서 분노보다는 연민(憐愍)을 느낀다. 모스크바까지 함락되자 일리야는 부상병들의 수송을 위해 자기 가문의 모든 마차를 기꺼이 내놓고, (아픈 만큼 성숙한) 나타샤는 안드레이가 거의 죽어가는 상태로 근처에 후송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를 찾으러 간다. 나타샤는 안드레이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헌신적으로 간호했지만, 안드레이는 끝내 숨을 거둔다. 그리고 모스크바에 있다가 (방화(放火) 혐의로)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 피에르는 같은 포로였던 농부 플라톤 카라타예프 Platon Karataev에게서 (육체를 초월하는 영혼의 자유로움 등) 인생의 진리를 배워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얼마 후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구출되었고, 1813년엔 나타샤와 결혼한다. “내 사상은 단순하고 명료해요, 나타샤. 선(善)을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 손을 잡아라. 그리고 적극적인 선행의 실천을 유일한 기치(旗幟)로 삼아라! (…)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남을 위해 생활하기 시작했어요.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겨우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인생의 행복을 완전히 깨달았어요.” 나폴레옹의 실패에 대해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를 인용합니다. “신은 파멸시키려는 사 람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맑은 영혼과 교양을 갖췄지만 부족한 외모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던 안드레이의 여동생 마리아는, 나폴레옹의 재침공 때 피난 가던 중 위험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니콜라이와 결혼하면서 끝이난다.
“예전에 니콜라이는 전투에 나갈 때 두려워했다. 이제는 두려운 감정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포화(砲火)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위험에 익숙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위험 앞에서 마음 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