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계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1929~현재)의 대표작으로, 순간순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주옥(珠玉)같은 문장 들이 넘쳐흐른다. ‘영원회귀(永遠回歸)’ eternal recurrence라는 니체의 사상과 ‘키치’ kitsch라는 단어 그리고 소련이라는 외세(外勢)의 지배를 벗어나려던 1968년 1월부터 8월까지의 ‘체코의 민주화 운동[프라하의 봄]’ Prague Spring이 내용의 뼈대이다.
주요 등장 인물은 네 명과 한 마리의 개(dog)이다. 2년 만에 아들 하나를 낳은 후 (양육권은 아내에게 넘긴 채) 이혼한 외과 의사 토마스, 토마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되는 시골 처녀 테레자[테레사], 토마스의 섹스 파트너이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사비나, 사비나의 사랑을 위해 가정과 직장 모든 걸 버린 교수 프란츠, 그리고 토마스가 테레자에게 청혼하면서 선물한 개 카레닌 Karenin.
*토마스 : 테레자 = 부부관계
*토마스 : 사비나 = 불륜관계 >> 2명 모두 삶은 우연이고 삶은 허무하다고 생각
*사비나 : 프란츠 = 구애관계
*카레닌 : 강아지
토마스와 사비나는 삶을 지배하는 건 ‘우연’이라고 (그 래서 삶은 허무[무의미]하고 가볍다고) 생각하고, 테레자와 프란츠는 삶을 지배하는 건 ‘운명’이라고 (그래서 삶은 의미가 있고 무겁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이것은 각 장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는데 토마스의 이야기는 ‘가벼움과 무거움’(1장과 5장)이고, 테레자의 이야기는 ‘영혼과 육체’(2장과 4장)이며, 사비나와 프란츠의 이야기는 ‘이해받지 못한 말들’(3장)과 사비나와 프란츠의 결말은 ‘대장정’(6장)이며, 토마스의 테레사의 결말은 ‘카레닌의 미소’(7장)이다.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 rehearsal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 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지닌 토마스는 자신의 모든 언행(言行)에 (그리고 수많은 여성과 의 관계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며 산다. 그러던 중 동료 대신 (우연히) 업무상 가게 된 시골의 한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테레자를 만나고 (우연히) 명함을 건넨다.
그러나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래서 삶의 모든 것이 ‘무스 에스 자인? 에스 무스 자인’ Muss es sein? Es muss sein, 즉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식당 종업원 테레자에게는, 여섯 번이나 연속된 토마스와의 우연한 만남은 운명이었다.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를 갈망하던 테레자는, 누구든 자기를 구원해 달라는 신호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고 있었다.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그러다 유일하게 식 당에서 책을 읽고 있던 토마스가 그녀의 레이다에 딱 걸린다. 그런 토마스가 내민 명함은 테레자에겐 (운명적인) 사랑의 징표였다. 테레자는 토마스를 구원자로 (즉 백마 탄 왕자님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명함 하나만 달랑 든 채 무작정 프라하로 올라가 그녀의 삶 전체를 토마스에게 던진다.
함께 지내면서 토마스도 테레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토마스에게 사랑은 (자신이 테레자를 돌봐주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끌어내는 연민(憐愍)이었던 반면에 테레자에게 사랑은 (토마스가 온전히 테레자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삶과 육체에서 고귀한 정신적인 면을 끌어내 주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테레자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사비나와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는 토마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테레자는 질투심에 밤마 다 악몽에 시달린다. (역시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으로) 토마스는 그런 테레자에게 청혼하면서 강아지 카레닌을 선물한다.
테레자에게 키치를 강요한게 어머니라면, 사비나에게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사비나는 “배신(背信)이란 정해진 틀을 깨고 (줄[경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외치며, 사회적 규범들과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간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 veil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未知)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것이 목표일까?”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다가 새로움이 익숙함[키치]으로 변하면, 배신하고 또 다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소련의 침공으로, 주인공들의 삶도 큰 변화를 겪게된다. 소련의 통치를 피해 토마스와 테레자는 스위스로 몸을 피하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한 토마스의 삶의 모습에 테레자는 혼자서 체코로 돌아간다. 테레자가 삶 깊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마음속에선 테레자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낀 토마스도 곧 체코로 돌아간다. 하지만 역시 스위스로 몸을 피한 사비나는 그곳에서 평화롭다 못해 권태롭기까지 한 삶을 살아온 모범적인 가장이자 교수인 프란츠를 만나고, 프란츠는 자신의 권태로운 삶을 흥분으로 가득 채우는 혁명과 망명과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들로 무장한 사비나 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 둘은 같은 단어라도 서로의 개념이 너무도 달라 둘만의 어휘 사전을 작성해야 할 만큼 이질적(異質的)이었다.
“(프란츠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살기’란 군중[대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비나에게)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진리 속에서 살기로 작정한 후 가정과 직장 모두 버리고 사비나에게 온 프란츠의 진심[무거움]은, 사비나에게는 배신할 순간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래서 사비나는 말없이 파리로 떠난다. 그 후 프란츠는 괴로워하던 자신을 보듬어준 예전의 제자와 함께 살게 되지만, 여전히 마음은 온통 사비나뿐이었다.
그러다가 정의와 진리의 실천을 위해 (그러나 사실은 사비나가 자신의 그런 행동을 칭찬하고 그래서 다시 자신을 좋아해 주리라는 생각에서) 프란츠는 ‘대장정’에 참여한다. 캄보디아로 입국해서,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던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캄보디아에 대한 봉쇄(封鎖)를 풀어달라고 베트남에 항의하는 평화행진이었다. 그러나 한 사진기자가 실수로 지뢰를 밟아 그의 피가 시위대가 들고 있던 깃발에 튀었고, 그러자 예기치 않게 매우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며 시위에 참여했던 미국의 한 여배우가 그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며 환호하는 모습에 프란츠는 정신을 차린다. 대장정조차 가식이었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건 직전까지 자신을 돌봐주며 함께 살던 제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깨달은 바 로 그 순간, 프란츠는 강도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고 그의 묘비(墓碑)엔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이 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프란츠가 이런 일을 겪을 때쯤, 체코에서 토마스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공산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오이디푸스 Oedipus에 빗대어 쓴 글을 잡지사에 기고한다. 그런데 (당시 체코가 소련의 세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화근(禍根)이 되어, 사과(謝過) 대신 사표를 쓴 후 시골로 내려가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공산주의자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權座)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언제나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테레자와 함께 나름 잘 지낸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카레닌이 암에 걸려 죽는다.
“개에게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행복의 순간이었다.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세상에 다시금 있게 된 것을 놀라운 것으로 여겼고, 솔직하게 기뻐했다. 그에 반해 테레자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녀는 밤이 연장되고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다.”
카레닌은 작품 속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 즉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을 실천하는 존재로 그려질 뿐만 아니라 테레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존재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 즉 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기분전환 겸) 인근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토마스와 테레자 모두 사망한다. 토마스의 묘비에 ‘그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왕국을 원했다.’라고 쓴 토마스의 아들 시몽 Simon은 사비나에게 그들이 행복하게 죽었다는 편지를 보내고, 사비나는 또다시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하며 끝이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