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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고침안면: 춘추전국시대 합종연횡의 주인공 장의 이야기

지적허영 202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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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안면 (高枕安眠)은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의미로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한 상태를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춘추전국시대 합종연횡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장의(張儀)가 위애왕(魏哀王)을 설득한 이야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자세한 뜻과 유래는 아래 글에서 확인해 보세요!

 

고침안면 (高枕安眠)

▶출전: 『사기 史記』·『전국책 戰國策』

 

전국(戰國)의 중엽(中葉)인 주연왕(周燕王) 315년(B.C 334)부터 난왕(想王) 6년(BC 309)까지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활약한 시대다. 그들은 전국의 칠웅(七雄)을 화려한 무대로 보고 종횡가(從橫家)답게 종횡으로뛰어다녔다.

 

사마천(司馬遷)이 이 두 사람을「위험한 선비」라고 평한 것도 적평(適評)이었다. 소진은「합종(合從)」을 외치며 진 이외의 각국이 동맹하여 진(秦)에 대항할 것을 설득했다. 장의는「연횡(連衡)」을 제창하여 여섯 나라가각각 진(秦)과 동맹해서 진(秦)을 따르기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 장의가 어떤 경력의 소유자인지는「견아설(見我舌)」에서 보고 여기서는 그 활약상(活躍相)의 일단을 소개한다.

 

장의의 수법은 소진보다 악랄해서 진(秦)의 무력을 배경(背景)으로 이웃 나라들을 침략했다. 진혜왕(秦惠王) 10년(B·C 338) 장의는 스스로 위(魏)를 침략한 것을 시발로 대략 10년 동안에 전후 네 번에 걸쳐 위(魏)를 침범하고 있다.

 

그 동안 장의는 위(魏)의 재상이 되고 진(秦)을 위해 일을 피했을 뿐 아니라 위양왕(魏襄王)과 애왕(哀王)에게 합종(合從)을 그만두고 연횡(連衡)을 따를 것을 권했으나 채택이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秦)은 본보기를 보이는 의미로 한(韓)을 토벌하여 8만의 군사를 죽였고 제후들을 떨게 했다.

 

장의는 그 기회를 잡아 다시 애왕(哀王)을 설득했다. 우선 최초로 위(魏)는 천리사방도 없고 병졸도 30만을 넘지 못하는 약국이란 것을 지적한다. 그런 나라는 영국의 통로(通路)가 될 가능성이 많으며 남은 초(楚) 서는 한(韓) 북은 조(趙) 동은 제(齊)와 국경을 이웃해서 그 방비를 위해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이 있다.

 

그 어떤 나라하고 동맹을 맺는다 해도 다른 나라의 원한을 사므로 그런 방법은 사분오열(四分五裂)이라고 설득했다. 다음으로 합종을 비난하여 형제의 맹방을 맺었다 한들 친형제 끼리도 금전상의 다툼이 생기는 것을 보면 합종이란 허울 좋은 사기라고 했다.

 

이야기를 다시 당면 문제로 끌고 들어가 진(秦)을 섬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른지 아느냐고 위협했다. 즉 진(秦)이 위(魏)와 조(趙)의 길을 끊고 한(韓)을 권유해서 함께 위(魏)를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진을 섬기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아느냐고 이번에는 달랬다.

 

「진을 섬기면 곧 초(楚)와 한(韓)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초와 한의 걱정이 없어지면 대왕(大王)은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나라는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이다.」 또한 진(秦)의 목적은 초(楚)에 있으므로 위(魏)와 함께 초(楚)를 공격하여 초(楚)를 나누어 갖자고 설득했다.

 

애왕(哀王)은 장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장의를 진으로 보내 화친을 청했다고 하나 실은 복종을 맹세한 것이다. 이것으로 합종(合從)의 기초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에 장의는 초(楚)로 가나 이 때의 일은 「징갱취제 懲羹吹虀」에서 별도록 다루겠다.

 

다시 한·제·조·연으로 신랄한 변설을 휘두르며 다녔고 주난왕(周赧王) 4년(B.C 32)에 연횡(連衡)은 성립했다. 그러나 장의 사랑한 진의 혜문왕이 죽고 무왕(武王)의 세상이 되자 그의 명성은 낙일(落日)이 되었고 난왕 6년에 위(魏)에서 죽었다. 장의가 위애왕(魏哀王)을 설득한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의「위·애왕」에 있고, 『사기(史記)』에도 있다.

 

2023.07.09 - [중국고전배우기] - 고사성어 고복격양: 십팔사기 요 임금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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