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휴의 뜻은 만 가지 일도 끝장이란 의미로 어떤 방책도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로 당나라 말 혼란시대 형남이란 소국의 고계흥 자손인 보훈이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웃음으로 얼버무려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춘것에서 유래했다.
만사휴의 萬事休矣 뜻과 유래
출전 出典 『송사 宋史』 형남고씨세가 荊南高氏世家
만사휴의 萬事休矣 뜻
萬 일 만 만 事 일 사 休 쉴 휴 矣 어조사 의
만사휴의(萬事休矣)란 어떠한 방책(方策)도 강구할 수가 없는 것으로 어떤 사태에 직면해서 그것에 대한 방책이 서지 않을 경우나 뜻하지 않은 실패를 해서 되돌릴 수가 없는 경우에 잘 쓰인다.
비슷한 말에 만책(萬策)이 다하다 라는 것이 있으나 이것은 한번 이것 저것 수단을 써 본다음,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손을 떼는 것인 반면 「만사휴의」는 처음부터 어떻게도 할 수가 없어서 수단은 준비가 되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만사휴의 萬事休矣 유래
만사휴의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입에 담는 것으로「宋史」의「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에서 유래된 성어이다.
당나라 말년 황소의 난(黃巢亂)이 일어나 천하는 어지러울대로 어지러워 전란 30년으로 당의 명맥이 끊어지고 송이 새로 일어나기까지 50여년 동안 왕조가 바뀌기 5번, 더구나 그동안 지방에 할거한 소국은 10개나 되고, 늘 무력에 의한 항쟁찬탈(抗爭纂奪)이 행해졌다.
군주란 무장출신이 아니면 도적이나 이민족이고, 초반에는 무력을 배경으로 군림하나 2~3대가 되면 배경이 없어져 대개 유약해져 버리고 만다。
더구나 소국중에는 대국의 보호아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있어 기생충과 같이 하나의 숙주(宿主)가 망하면 다음 숙주로 옮아갔던 것이다.
그것은 소국이 대개 오래 명맥을 유지한 것 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형남(荊南)도 그런 소국의 하나다.
개조(開祖)인 고계흥(高季興)은 후량(後梁)의 태조를 따랐고 무공에 의해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가 되었으며 다시 발해왕(渤海王)에 봉해졌다.
후량이 망하고 후당(後唐)의 세상이 되자 장종(莊宗)에 의해 남평왕(南平王)으로 봉해졌으나 명종(明宗)에게 공격을 받아 오(吳)에 붙어 있었다.
그 아들 종희(從誨)는 영리하고 피가 많아 다시 후당에 붙어 남평왕이 되고 남한(南漢) 민(閔) 촉(蜀)이 다 제위에 오르자 그들에게 신(臣)이라 칭했으므로 각국에서는 그를 천시하여 고무뢰(高無賴)라고 불렀다.
종회(從誨)의 뒤는 아들인 보융(保融) 그 후는 보융의 동생인 보훈(保勛)이 자리를 이었으나 그 무렵에는 후주도 망하여 송(宋)이 되고 보훈도 송에 신종(臣從)하고 있었다.
보훈은 유아일 때 종회의 총애(寵愛)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웃음으로 얼버무려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추곤 했다.
그래서 형남 사람들은「만사휴의(萬事休矣)」모든 것은 끝장이다! 하고 생각했었다.
과연 그는 정권을 이어 받자 굉장한 누각을세워 민력(民力)을 피로시켜 원한을 샀고, 한편 음일(淫失)은 쉴 줄을 몰라 매일 부로 창기(媚妓)를 불러 모아 그들에게 체격이 튼튼한 남자들을 짝지워 맘껏 희롱을 시키고는 첩들과 함께 발 뒤에서 그것을 보며 즐겼으므로 정치는 어지러워져 그가 죽자 반정(藩政)을 송(宋)에게 반환하고 형남은 망해 버렸다.
송(宋)의 건륭(建隆) 4년의 일인데 고계흥이 형남에 자리잡은지 4세 5주(主) 57년이 소국의 명맥이었다.
2023.07.29 - [중국고전배우기] - 고사성어 만가 挽歌 뜻과 유래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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