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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반식재상 伴食宰相 뜻과 유래 배우기

지적허영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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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식재상 伴食宰相은 뜻은 무위도식하면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먹기는 하는 무능한 재상(정치가)를 뜻하며 그 유래는 당 현종 시절 유능한 재상인 요숭과 그의 후임 노회신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식재상 伴食宰相 뜻
반식재상 伴食宰相 뜻과 유래

반식재상 伴食宰相 뜻과 유래 배우기

출전 出典, 당현종 唐玄宗의 현상 賢臣인 요숭 姚崇과 노회신 盧懷愼의 관계를 말한데서 기인

반식재상 伴食宰相 뜻

伴 짝 반 食 밥 식 宰 재상 재 相 서로 상
아무일도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무능한 정치가나 사람을 뜻한다

반식재상 伴食宰相 유래

당(唐)의 현종황제(玄宗皇帝)는 즉위한 이듬해(713) 연호를 개원(開元)이라 고치고 태평공주일파의 음모를 제거하자 다음 개원 2년에는 백관의 주옥금수(珠玉錦繡)를 궁전 앞마당에 쌓아 놓고 불을 질렀으며 백관에서 궁녀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직분에 걸맞은 의복을 규정하고 사치에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국가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의 자취를 보면 군주의 사치와 후궁의 문란이 쇠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통감한 정치에 대한 현종의 굳은 결의가 거기 엿보인다.

 

그 결의로써 현종은 현상(賢相)을 잘 쓰고 나아가선 그 간언(諫言)을 들어 정사(政事)에 정려했고 또 문학 예술을 장려해서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당(唐)의 최성기를 이루었다.

 

현종(玄宗)을 도와「개원의 치」의 기초를 닦은 재상은 요숭(姚崇)이었다. 현종이 주옥금수를 불태워 사치를 훈계한 것도 또 형벌을 바로잡고 부역과 조세를 해서 민중의 부담을 가볍게 하는 한편 병농일치(兵農一致)의 개병제도를 고쳐 모병제도(募兵制度)로 한 것도 다 이 요숭(姚崇)의 건언(建言)에 의한 것이었다.

 

요숭(姚崇)은 백성을 위해 꾀하는 것이 나라를 번영시키는 길이라는 원칙을 일관시키는데 힘쓰고 적어도 사사(私事)를 위해서는 희노(喜怒)를 나타내는 법이 없었으며 정치의 재결이 신속 정확한 것에 있어서는 그 어떤 재상도 미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 일례로서「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는 말이 생겼다. 언젠가 요숭(姚崇)은 볼일 때문에 정무(政務)를 볼 수가 없어 황문감(黃門監)인 노회신(盧懷愼)이 이를 대신했다.

 

노회신은 청렴결백, 무욕염담(無欲恬淡), 신변을 꾸미는 일이 없고 정무에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요숭의 맘에 드는 국상(國相)이었으나 요숭의 직무를 대행한 10여년 동안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요숭처럼 재결해 갈 수가 없어 정무를 지체시켰다.

 

노회신은 자기가 멀리 요중에게 미치지 못함을 피부로 느껴 알고, 그 후부터는 만사에 요숭을 추천하며 사사건건 요술과 상의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노회신을 상반대신(相伴大臣)이란 뜻으로「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불렀다. 이 말은 무능한 대신을 혹평하는 말로서 지금도 쓰이고 있으나, 당시의 사람들 마음으로서는 노회신을 냉소한다기보다 요숭에 대한 경의 (敬意)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요숭 다음에는 송경(宋璟) 한휴(韓休)등 현상(賢相)이 계속하여「개원의 치」를 발전시켰으나 현종은 이 치세(治世) 후반에 총희(寵姬)인 무혜비(武惠妃)를 잃고 양귀비(楊貴妃)를 얻음으로써 정무(政務)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다.

 

직언(直言)하는 자를 물리치고 간신들의 감언(甘言)을 좋아하며 주색에 빠졌는데 정무를 후궁의 환락으로 바꾸어 나라를 쇠망으로 이끈 종래의 군주와 같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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