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지야는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임해야 한다는 뜻으로 조 나라 명장인 조사(趙奢)가 그 아들 조괄(趙括)의 병법에 대한 이론만을 자랑하는 점을 꾸짓기 위해 한 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병사지야 兵死地也 뜻과 유래
출전 出典 『사기 史記』 염상.인상여전 廉頰·藺相如傳
병사지야 兵死地也 뜻
兵 병사 병 死 죽을 사 地 땅 지 也 잇기 야
병사는 땅에서 죽는다는 뜻으로 전쟁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속 뜻를 가지고 있다.
병사지야 兵死地也 유래
「병(兵)은 사지(死地)다」라는 말은 「싸움이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문경지교(刎頸之交)」로 유명한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와 나란히 조(趙)에서 명장(名將)으로 이름 높았던 조사(趙奢)가 한 말로서 남아있다.
조사(趙奢)는 원래 농지의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관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염결(廉潔, 청령 결백)함을 평원군이 인정하고 발탁해서 쓰고 또 후에 군사상으로 대공을 세워 마복군(馬服君)이란 칭호를 하사받고 위(位)는 염파(廉頗)·인상여(蘭相如)와 어깨를 견주게 된 인물(人物)이다.
그는 일찍부터 군략가(軍略家)로서 이름이 높았으나 그 아들에 조괄(趙括)이란 자가 있었다。조괄(趙括)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우고 있었으나 참새에 굴레를 씌울 정도로 영리해서 철이 들 무렵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터득하고 늘 말하기를 「병법에 있어서는 천하가 넓다해도 나를 따를자는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확실히 괄(括)은 자부할만한 점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인 조사(趙奢)와 군략에 대해 논쟁을 벌린 일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도 일언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이 때 조사(趙奢)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있었으나 한 마디도 칭찬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곁에서 아들의 청산유수 같은 능변에 정신을 잃고 듣고 있던 어머니는 그 아버지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이 물러난뒤 왜 한 마디도 칭찬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조사는 말했다.
「싸움이란 목숨을 거는 거야(兵死地也) 그렇건만 괄(括)은 이론만을 휘둘러 아무렇지도 않게 논하고 있다. 만약 저것이 대장이 되는 일이 있다면 저것 때문에 조(趙)도 망해 버릴 것이다」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틀림이 없었다. 뒷날 조효성왕(趙孝成王) 7년 조(趙)가 상당(上黨)을 합병한 일이 발단이 되어 진(秦)과 싸울 때 병사지야(兵死地也)를 모르고 제 잘난척 서투른 병법을 휘두른 조괄(趙括)은 일전(一戰)에 조군 45만을 잃고 조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병사지야 兵死地也 속 등장 인물
조사(趙奢)
조괄(趙括): 조사의 아들
2023.08.06 - [중국고전배우기] - 법삼장 法三章 뜻과 유래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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