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부득하호(騎虎之勢不得下虎 )는 수나라를 창업한 수문제(양건)의 부인인 선비족 출신 독고황후가 남편에게 하루 천리를 달리는 호랑이를 탄 이상 도중에서 내릴 수는 없읍니다 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수서 독고황후전에 기록되어 있다.
기호지세 騎虎之勢 뜻과 유래 배우기
출전 出典 『수서 隋書』 독고황후전 獨孤皇后傳
위(魏) 촉(蜀) 오(吳)의 소위 삼국 대립은 위(魏)의 승리로 끝나고, 위(魏)는 국호를 진(晉-西晉)이라 고치고서 천하를 통치했으나 새외 민족(塞外民族)의 침입으로 불과 50년으로 망하고, 새로히 남방 양자강 지대에 진(晉-東晉)이 전의 오(吳)의 도읍지었던 건업(建業-南京)을 도읍으로 정했다.
서진(西晉)의 옛 땅은 흉노(匈奴), 갈(鞨), 선비(鮮卑), 저(氏), 강(羌)의 다섯 이민족 즉 오호(五胡)에 의해 점령되어 한민족과 대립 항쟁을 계속 약 130년 동안에 16개의 나라가 생겼다가 망했다가 했다.
그 후 동진(東晉)은 내란으로 망하고 새로 송(宋)이 생겨(420년) 이하 제(齊), 양(梁), 진(陳)이 뒤를 일어나고(이상 남조) 한편 북쪽에서는 선비(鮮卑)가 후위(後魏-북조)를 세운(440)이래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로 계속 되었다.
이 시대를 남북 조시대(南北朝時代)라고 한다. 그런데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외척인 한인(漢人) 양건(楊堅)은 뒷 처리를 하기 위해 궁중으로 들어갔다.
*양건은 선제에게 자기의 딸인 여화(麗華)를 바쳤다.
이 사람은 외척인 동시에 인물도 훌륭해서 재상으로서 정치를 총괄하고 있었으나 언제나 자기 나라가 이민족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것을 늘 원통하게 생각하고 「기회만 있으면 다시 한인(漢人)의 천하로 만들겠다」고 은근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선제(宣帝)가 죽었다. 선제의 아들 태자 정제(靜帝)는 아직 어리고 그리 영리하지도 못했으므로 잘 구슬러서 제위(帝位)을 양도시켜 수(隋) 나라를 세웠다. 때는 서력 581년, 양건은 그로부터 7년 후에 남조(南朝)의 진(陳)을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했다.
이것이 수(隋)의 고조문제(高祖文帝)다. 양건의 아내가 선비족 출신 독고황후(獨孤皇后)다. 전부터 남편에게서 그의 대망(大望)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선제가 사망하고 남편이 마침내 북주(北周)의 천하를 빼앗기 위해 궁중으로 들어가 분주획책(奔主劃策)하고 있을 때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호랑이를 탄 이상 도중에서 내릴 수는 없읍니다 (騎虎之勢不得下虎)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호랑이와 함께 최후까지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미 대사를 일으키시는 일을 착수한 이상 도중에서 꺾여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목적을 달하지도록 애써 주십시요. 양견이 용기를 복돋아 주는 처의 말에 격려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독고황후는 하남(河南)사람, 북주 대사마(大司馬)인 하내공(河內公) 신(信)의 딸이다. 신(信)은 양견의 됨됨을 옳게 보고 딸이 14살 때 시집을 보냈다. 그녀는 처음에는 온순하게 부덕을 지키고 있었으나, 후에 그 언니(姉)가 북주 명제(明帝)의 황후, 장녀(長女)가 선제의 황후가 되자 점차 여걸(女傑)다운 솜씨를 발휘했다.
하나 이런 이야기도 있다. 전에 이민족이 그 값이 8백만금이나 되는 진기한 주옥(珠玉)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어느 사람이 그것을 사라고 권하자 「지금 외적이 연방 침입하고 있어 장병은 그 방위에 피로하고 있다. 옥을 살 8백만금의 돈이 있으면 공을 세운 장병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딱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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