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남가일몽은 남쪽으로 뻗은 큰 가지(柯) 아래에서 꾼 꿈이란 뜻으로 그것이 널리 꿈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은 이공좌가 쓴 남가기에 나오는 순우분이라는 주인공인 꾼 꿈 이야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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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일몽 南柯一夢 뜻과 유래
출전 出典 『이공좌 李公佐』 남가기 南柯記
당(唐)나라 제9대 덕종(德宗, 785~804)때의 일이라고 한다. 양자강 하류, 광릉군(강소성)에 순우분(淳于禁)이라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협객(俠客)으로 이름을 날려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이 지방의 장군의 부관노릇을 한 적도 있었으나 술을 좋아하고 웬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질이라 결국 장군하고 충돌한 끝에 낙향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 저택 남쪽에 아주 큰 느티나무가 있어 널찍한 그늘을 만드므로, 날마다 친구들과 같이 그 그늘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가을도 다 지난 어느 날 순우분(淳于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친구와 함께 나무 그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만 도를 지나쳐 곤드레가 되자 친구들은 그를 들어서 집앞 처마 밑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뒷일은 우리가 할테니 안심하고 한잠 푹 자라고 했다. 순우분이 어슴푸레 잠이 들었을 때 두 사람의 자주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나타나 괴안국왕(槐國安王)께서 부른다고 하자 깜짝놀라 옷깃을 여미고 따라가니 백마가 끄는 검은 칠을 한 마차에 태워서 문(門)을 나서자 느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순우분은 아주 기묘하게 생각했으나 물어볼틈도 없고 근처의 산천초목(山川草木)은 인간 세계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수십리 마차가 달렸을때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고 금색 현판이 걸린 붉은 칠을 한 누문을 지나 국왕 앞으로 안내되었다.
국왕은 대단히 기뻐하며 융숭한 대접을 했다. 결국 왕의 딸과 결혼을 한 순우분은 친구였던 주변(周辯)과 전자화(田子華)를 만나게 되었다. 얼마후 국왕은 순우분에게 물산이 풍부하고 국민도 많은 남가군(南柯郡)의 정치를 맡아 볼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애써 봐달라고 하므로 순우분은 두 친구를 대동하고 장관으로써 부임했다.
거기서 노력하기 20년, 아주 통치가 잘되었으므로 백성들은 그 공적을 칭송하고 순우분의 송덕비를 세울 정도였다. 이것을 본 국왕은 크게 기뻐하며 순우분을 대신(大臣)으로 임명했다.
그해 단라국(檀羅國)이 남가군을 공격했으므로 순우분은 친구 주변에게 3만 장병을 주어 대항케 했으나, 적을 깔보며 방심을 한 주변은 전쟁에 패하고 도망쳐 돌아와서 병사했다.
다행히도 적은 전리품을 가지고 철수했으므로 별일은 없이 끝났으나 얼마후 순우분의 처도 병사했으므로 순우분은 서울로 돌아왔다.
이 서울에서는 순우분이 왕의 부마(사위)이고 남가군을 잘 다스렸을 뿐더러 외적을 물리쳤다고 해서 지체있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분의 집으로 찾아들어 그 세력이 나날이 커져 갔다.
그때 서울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될 만큼의 변이 있었다는 상소문을 왕에게 올린 자가 있었다. 놀란 사람들은 이것은 반드시 순우분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소문을 퍼뜨렸다.
순우분의 세력이 강대해진 것을 은근히 꺼려하고 있던 왕은 순우분의 가재(家財)를 몰수시키고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순우분(淳于禁)은 불안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드디어 왕은 순우분을 불러들이더니 딸이 낳은 손자들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 가라고 했다.
돌아가라고 하시지만 어디로 돌아갑니까? 제집은 이 서울 안에 있읍니다 라고 분이 말하자 왕은 웃으며 그대는 본디 인간 세계의 사람, 그대의 집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그때 순우분은 하품을 하기 시작했는데 잠시 잠에 떨어진듯 했으나 눈을 떠보니 전에 지상에서 살던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왕이 명하는대로 자주빛 옷을 입은 두 사자(使者)와 종자(從者)에게 이끌리여 앞문을 나오자, 이미 종자의 모습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자기는 소가 끄는 털털거리는 수레를 타고 있었다.
성문을 나오니 사자(使者)들도 맥이 빠진 것 같다.
도대체 광릉군에 언제 도착하는가? 하고 묻자 「이제 곧 도착합니다」하고 말한다. 돌연 구멍을 빠져 나오자, 옛날과 다름 없는 그전 마을의 지붕이 보였다.
슬퍼진 순우분은 무심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차는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멍청하게 서서 자기 집으로 찾아들려고 하지 않는 분의 모습에 두 사자(使者)는 큰 소리로 분의 이름을 불렀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자, 두 친구들은 이제 막 일을 끝낸 모양으로 손발을 씻고 있었으며, 저녁해도 아직 서쪽 담 너머로 떨어져 있지는않았다.
이것이 순간적인 꿈이었었구나 하고 느낀 순우분은 놀라는 두 친구들과 느티나무 밑으로 가보았다. 나무 밑둥에 과연 구멍이 있었다.
「여기로구나, 내가 지나온 곳은 하고.」 말하자 친구들은 「여우나 늑대에게 홀린걸세」 하면서 하인을 시켜 그 구멍을 파헤쳐 보라고 명했다.
그러자 침대를 놓을 만큼의 광장이 나타나고 수 많은 개미가 떼지어 있었다. 그 속에 작은 대(臺)가 있고 붉은색을 한 큰 개미가 두 마리 있었다.
또 다른 구멍 하나를 파보니 그것은 남쪽으로 뻗은 가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평평한 곳에 토성(土城)이 있고 그곳에는 개미가 떼지어 있었다.
두 마리 큰 개미는 국왕 부부이고, 남쪽가지 평평한 곳은 남가군이라고 짐작한 순우분은 파헤친 곳을 다시 원상대로 회복시켜 놓았으나 그날 밤 큰 비로 개미는 다 떠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괴안국의 이변이란 이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일이 지났을까 말까 하는 동안에 두 친구들은 계속 병사했다.
그후부터 순우분은 갑자기 술을 끊었으나, 3년후 47세로 죽었다고 한다. 이상 당(唐)의 이공좌(李公佐=810 ~ 840)가 쓴 남가기(南柯記)의 줄거리다.
개략은「이문집(異聞集)」에 나오고 이것을 희곡(戱曲)으로 꾸민「남가기(南柯記)」가 있다.
꿈 이야기는 멀리『장자(莊子)』(齊物論篇)에서 꿈에 나비가 된 자기와 살아서 이 세상에 있는 자기와는 아무런 구별도 없듯 생(生)과 사(死) 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호접의 꿈 이야기가 있고,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설화집『수신기(搜神記)』에는 많이 나오나, 꿈에서 영화를 다하고 이 세상의 실상을 알게 된다는 줄거리로 유명한 것은 역시「한단지몽(邯鄲之夢)」 이야기다.
2023.07.19 - [중국고전배우기] - 기화가서 奇貨可居 뜻과 유래 완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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