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란물계리는 어려울 때 자기의 이익만을 계산만 하면 결국 자기에게 화가 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고사성어는 춘추 선공편에 소개되고 있는데 주 나라때 사관인 사일(史佚)이란 자가 말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란물계리 賴亂勿計利 뜻과 유래 배우기
출전 出典』『춘추 春秋』 정周의 사공 史供(선공편 宣公篇)
뇌란물계리 賴亂勿計利 뜻
賴 의뢰할 뇌 亂 어지러울 란 勿 말(아니다) 計 셀 계 利 이로울 리
뇌란물계리 賴亂勿計利 유래
선공(宣公) 12년 봄 초자(楚子)는 정(鄭)을 포위하고 공격한지 17일이 되었다. 정에서는 화평을 청하는 것이 어떤가 점쳐 보았더니 불길하였다.
그래서 조묘(祖廟)에 국가 멸망에 대한 곡별례(哭別禮)을 행하고, 도읍 광장에 전차(戰車)를 벌려 놓으면 (최후의 일전에 대비하는) 어떤가를 점치니 길(吉)하였다.
그래서 국민들은 다 조묘(祖廟)로 모여 곡읍(哭泣)하고 성루를 지키는 병사들은 각기 자기 수비에서 곡읍했다.
하나 초자는 (적의 죽음을 각오함을 알고) 퇴각했으므로 정(鄭)은 성루를 수선했다. 그로부터 진군하고 또 포위해서 3개월에 걸쳐 겨우 함락시켰다.
초군은 황문(皇門)에서 들어와 광장으로 밀려 들자 정백(鄭伯)은 웃통을 벗고 양을 끌고서 마중나가 말했다.
저는 전혀 하늘이 버리시어, 군주를 섬길 수 없게 되어 그 때문에 화를 내시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읍니다. 전부가 이놈의 죄입니다. 말씀하시는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가령이 몸을 생포하셔서 강남으로 끌고 가 강신(江神)의 밥을 만드시던지 또는 제나라를 쪼개 제후에게 나누시고 이 놈을 노예로 삼으신다 하셔도 상관없읍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전부터의 정의를 잊으시지 않고 조상인 여(厲) 선(宣) 환(桓) 무(武)에게 복(福)을 구하셔서 이 사직(社稷)을 멸망시키시지 않고 다시 주군을 섬기도록 허락하셔서 다른 9현과 같이 해 주신다면 이것은 오로지 주군의 은혜일 것이고 또 제가 바라는 바이오나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읍니다.
삼가 제 진심을 말씀드렸읍니다. 좋도록 처리해주십시요.
왕의 좌우가 말했다.
들어주시면 안됩니다. 나라를 빼앗고 처단해버리십시요.
그러나 왕은 말했다.
이 사람에게는 겸손의 덕이 있다. 반드시 백성을 쓰는데도 신의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 나라를 빼앗아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30리를 후퇴해서 정백(鄭伯)에게 화평을 허락했다.
초(楚)에서는 반왕(潘尫)이 정으로 들어가 맹서하고, 정에서는 자량(子良)이 나와 인질이 되었다.
유월에 진군(晉軍)이 정을 구원하려 나왔다. 순임보(荀林父)가 중군(中軍)의 장이 되고 선곡(先穀)이 부장(副將) 사회(士會)가 상군(上軍)의 장, 극극(郤克)이 부장(副將) 조삭(趙朔)이 하군(下軍)의 장 난서(梨書)가 부장(副將) 조광(趙括)과 조영제(趙嬰齊)가 중군의 사마(司馬), 공삭(躍朔)과 한천(韓穿)이 상군의 사마, 순수(荀首)와 조동(趙同)이 하군의 사마, 한궐(韓厥)이 대사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황하까지 와서 정(鄭)이 이미 초(楚)에게 항복한 것을 들었다.
순임보는 회군하려고 생각했다. 「정을 구원할 수도 없게 되었는데 백성만을 고생시킨다。바보 같은 소리다。초가 돌아간 뒤 일을 시작해도 늦지는 않다」
사회(士會)가 말했다. 「그렇다. 싸움은 적의 헛점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덕(德)·형(刑)·정(政)·사(事)·전(典)·예(禮)이 여섯이 올바른 나라에는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적으로 삼아서는 안되고 공격해서도 안된다. 초자(楚子)는 정을 토벌했다. 두 마음(二心)을 낸 것이다」하자 선곡(先穀)이 말했다.
「그 의견은 틀린다. 우리 나라가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력때문이다. 지금 퇴각해서 정을 버리거나 초(楚)의 앞에서 물러서거나 해서는 우리의 무력이 뭐가 되는가? 함부로 패업을 잃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 군을 이끌고 나온 이상 적이 강하다고 해서 물러나는 것은 사나이다운 일이 아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는 중군의 부장으로서 부하를 이끌고 강을 건너 버렸다. 그러나 결국은 초(楚)에게 대패(大敗)하고 진(晉)의 패잔병은 대열도 짓지 못하고 그날 밤 강을 건넜다.
이때 반당(潘黨)이 왕에게 말했다.
「우리 한번 커다란 진지(陣地)를 쌓아서 진의 전사자(戰死者)를 거기다 묻고 경관(京觀=커다란 무덤)을 만듭시다. 저는 듣고 있읍니다. 적에게 승리를 얻었을 때는 반드시 자손에게 기념될만한 것을 남겨 그 무공을 잊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하자 초자가 대답했다.
「너는 모른다. 도대체 문자(文字)로 보아서도 『무(武)란 戈(창 과)를 止(그치다)』하는 것이다. 즉 무(武)란 난폭을 누르고, 무기를 거두고, 대업(大業)을 보존해서 승리를 확인하고 국민을 편안케 해서 다 화평스럽게 하며 의식(衣食)을 하게 하는(이 칠덕 - 七德)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적어 자손에게 그 문장을 기억하게 한다. 지금 나는 두 나라 사람들을 죽였다. 난폭한 일이다. 관병식을 해서 제후들을 겁내게 하는 것은 무기를 거두는 일이 되지 않는다. 난폭한 짓을 해서 무기를 자랑한다면 어찌 대업(大業)을 보존할 수가 있겠는가. 또 진(晉)은 아직도 지반이 튼튼하다. 어찌 승리를 굳혔다고 하겠는가. 민심에 거역되는 일도 많을 것이니 어찌 백성이 편하겠는가. 덕(德)도 없으면서 억지로 제후들의 쟁탈전이 시작된다. 어찌 화평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남의 약점을 노리고 또 남의 혼란한 틈을 타서 이쪽의 이익만을 즐긴다면 어찌 백성들의 의식을 족하게 할 수 있겠는가? 무(武)에는 칠덕(七德)이 있다는데 내게는 그 하나도 없다. 무엇을 자손에게 자랑한단 말인가? 그저 선군 (先君)의 사당(祠堂)이라도 만들어 이 싸움의 보고나 하겠다.
초자(楚子)는 황하의 신(神)을 제사지내고 조상의 궁을 지어 싸움의 결과를 보고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초(楚)가 정(鄭)에게 공격을 가할 때 그것을 끌어드린 것은 정(鄭) 의 석제(石制)로서 정의 반을 초가 차지하게 하고 나머지 반을 공자 어신(魚臣)을 떠받들어 정을 내 수중에 넣을 계획이었다.
그래서 신미(辛未)1년 정은 어신(魚臣)과 석제(石制)를 죽였다.
군자가 말하기를 「주(周)의 사일(史佚 편안할 일)이 뇌란물계리(賴亂勿計利 -난을 믿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의 일이다.
시경(詩經)에 〈나라는 어지럽고 백성은 괴로운데 화(禍)는 누구 위에(小雅、四月)〉 라고 있다. 재앙은 난을 기대하는 난을 이용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2023.07.23 - [중국고전배우기] - 국정농단 사법농단의 농단 壟斷 뜻과 유래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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