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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뜻과 유래 배우기

지적허영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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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 (百聞而不如一見)는 너무나 유명한 고사성어라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그 유래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백문불여일견는 한서 조충국전에 나오면 표현으로 조충국이라는 늙은 명장이 한선제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뜻과 유래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뜻과 유래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뜻과 유래

출전 出典 『한서 漢書』 조충국전 趙充國傳

백문불여일견 뜻과 의미

百 일백 백 聞 들을 문 不 아닐 부 如 같을 여 一 한 일 見 볼 견
(간적접으로) 백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번 보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백문불여일견 유래

한선제(漢宣帝)의 신작(神爵) 원년(A.D 61) 서북에 사는 티벳계의 유목민인 강(羌)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보다 앞서 강(羌)의 선령(先零)이란 일 종족이 황수(湟水) 북쪽에서 유목할 것을 허락받고 있었다.

 

그들은 풀(草)을 좇아 남안(南岸)까지 나타났는데 이때 진압을 맡았던 한(漢)의 장군이 불시에 선령(先勝)의 주된 자, 천여명을 살해했으므로 선정은 노해서 다른 강(羌)의 도움을 받아 한군을 공격한 것이다.

 

그 기세는 맹렬해서 한군은 대패하여 퇴각했다.이때 선제(宣帝)는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길(丙吉)을 후장군 조충국(後將軍 趙充國)에게 보내어 누구를 토벌군의 대장으로 삼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조충국은 이 때 나이 70을 넘고 있었다.그는 상규(上邽) 사람으로 젊었을 때부터 대흉노전에 종사하고 있었다. 무제(武帝)때 이사장군 이광리(貳師將軍 李廣利)의 막하로서 원정했으나 흉노의 기세가 강해 전군이 포위되었다.

 

식량도 부족하고 사상자도 많이 발생한 이 때 충국(充國)은 군사 백여명을 이끌고 돌진하여 몸에 20여군데나 상처를 받으면서도 마침내 포위를 뚫고 전군을 구했다.

 

무제는 그 상처를 보고 놀라 거기장군(軍騎將軍)에 임명했다. 이로부터 그의 대흉노, 대강(對羌)의 생애가 시작되었다. 그 인물됨은 침용(沈勇)하고 대략(大略)이 있어 진정 하문을 받기에 알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물음을 받자 대답했다.

 

「노신(老臣)보다 더 훌륭한 자는 없읍니다」

 

이어 그는 선제(宣帝)에게 불려나가 다시 질문을 받았다.

 

「장군이 강(羌)을 친다면 어떤 계략을 쓸 것이며 또 어느 정도의 군대가 필요한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잘 알 수 있읍니다 百聞不如一見

 

대저 군에 관해서는 실지(實地)를 보지 않고 멀리서 계획하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원컨대 금성군까지 나가서 도면을 그려 방책을 올리겠읍니다.

 

그리하여 다시 자기에게 일임해 주기를 청했다.

 

선제는 웃으며 「좋다」고 했다고 한다(『漢書』 趙充國篇)

 

「백문불여일견]이란 여기 나오는 것이 최초다. 아마도 민간의 속담이 아니었던가 한다. 널리 쓰이는 말이다. 서양 속담에는「열개의 소문보다 본 증거 하나」라는 말이 있다.

 

조충국(趙充國)은 금성에 도착한 후 자세하게 그 정세를 조사한 다음 둔전(屯田)을 상책으로 할 것을 상주했다. 기병을 그만두고 보병 1만여명을 남겨 이것을 각지에 분견(分遣)해서 평시에는 경작을 시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서 이 대책이 채택되어 중국은 거의 일년 동안 그곳에서 머물며 마침내 강의 반란을 진정시켰다. 그는 일견(一見)을 잘 살린 사람이었다.

백문불여일견 속 등장 인물

조충국(趙充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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