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뜻을 굽혀가면서까지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의미하는 말로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에서 원고생(轅固生)이 공손홍(公孫弘)에게 충고한 말에서 유래했다.
곡학아세 (曲學阿世) 유래와 뜻
出典(출전) 史記 儒林傳(사기 유림전)
전한(前漢) 제5대의 한무제(武帝)는 즉위와 동시 천하의 현량(賢良)한 선비(士)를 구해 우선 시인(詩人)으로써 이름 높았던 원고생(被固生)을 불렀다. 고생(固生)은 산동 태생으로 당시 70세였었으나, 황제의 부름에 감격해서「젊은이들에게 지지 않는다」고 백발을 휘날리며 나섰다.
그런데 이 강직하기 짝이 없는 노인이 나타나게 되면 맥을 출 수 없게 될 엉터리 학자들,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되돌려 보려고 필사적으로 고생(固生)의 험담을 늘어 놓았다. 「저 늙은이는 이제 아무런 쓸모도 없읍니다. 시골에서 그냥 지내게 내버려 두어 손자들이나 돌보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제는 그 중상을 물리치고 마침내 고생을 등용하기로 했다. 이 고생과 동시에 부름을 받은 것은 역시 같은 산동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였다. 공손홍은 (이 늙어빠진 영감쟁이가……)하는 눈초리로 고생을 노려 보았으나, 그래도 고생은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공손홍에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도가 어지러워서 속설(俗說) 이 유행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해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이 마침내는 사설(邪說) 때문에 참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자네는 다행히도 젊고 호학(好學)하는 선비라고 들었다. 부디 올바른 학문을 힘써 공부하여 세상에 펴내주게.
결코 자기가 믿는 학설(學說)을 구부려 (曲) 세상(世上)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않도록……」 이것이 곡학아세(曲學阿世)란 말이 생긴 초다.
이 영감쟁이하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홍도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동되어 크게 부끄럽게 생각하고 곧 무례를 사과하고서 제자가 되었다.
고생이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산동에서는 시를 배우는 자는 다 고생을 본받았고, 당시 이름있는 시인은 다 그의 제자였었다고 한다. 전에 사관(仕官)했던 경제(景帝)의 어머니 두태후(寶太后)는 아주 열렬한 노자(老子)파였다.
언젠가 박사 고생을 불러 물었다. 「그대는 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요?」 「노자는 머슴이나 노예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나이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것은 다멋대로 떠들어 대는 말에 지나지 않읍니다. 적어도 천하 국가를 논하는 인물이 문제시할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하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했다.
과연 태후는 크게 노했다. 「이 발칙한 자식 노자를 가짜 취급하다니! 이 놈을 곧 하옥시키라」 옥에 갇힌 고생은 벌로서 매일 돼지를 잡는 일을 하게 되었다. 태후로서는 70이 넘는 노인에게 돼지 잡기란 어려울 것이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다시 다른 벌을 줄 구실이 된다라는 생각에서였다. 심술궂은 할머니의 생각이란 예나 옛날이나 변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딱하다고 생각한 것은 황제였다. 예리한 칼을 옥중에 있는 고생에게 주어 돼지를 찌르게 했던 바 단 한번에 용하게도 돼지의 심장을 찔러 돼지는 쾅하고 쓰러졌다. 이 말을 들은 태후는 고생의 울상도 보기가 민망한 데다가 자기 아들이라고는 하나 황제가 그를 두둔하는 데는 더 이상 고생을 괴롭힐 수 없다고 마지못해 고생을 옥에서 풀어 주었다.
이 겁이 없고 권력을 두려워 하지 않고 직언 (直言)하는 태도에 탄복한 황제는 고생을 삼공(三公)의 하나인 청하왕태부(淸河王太傅)로 승진시켜 더욱 더 신임이 두터웠고「이젠 노령이니까」하고 아무리 부탁을 해도 면관(免官)이 되지 않다가 고생이 병들어 출사(出仕)를 못하게되자 겨우 면이 허락될 정도의 신임을 받았다.(『史記』儒林傳)
2023.07.09 - [중국고전배우기] - 고사성어 古稀(고희): 두보의 곡강시 인생칠십고래회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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