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주위상계는 우리가 흔히 삼십육계줄행랑으로 줄여서 말하는 고사성어로 36가지의 책략 중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은 상책이라는 뜻으로 그 유래는 왕경칙(王敬則)이 송나라 명장 단장군(檀將軍)의 위군을 피해 도망한 것을 힐난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삼십육계주위상계(책) 三十六計走爲上計(策) 뜻과 유래
삼십육계주위상계 출처.출전
『제서 齊書』 왕경칙전 王敬則傳
삼십육계주위상계 뜻과 한자
三 석 삼 十 열 십 六 여섯 륙(육) 計 셀 계 走 달릴 주 爲 할 위 上 윗 상
36가지 계책(計策) 중(中)에서 줄행랑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삼십육계주위상계 유래
삼십육계 중 줄행랑이 제일이라는 뜻으로 누구나 다 아는 말이나 그리 간단하지도 않다.
한 책에서는「피하는 일은 많으나 도망가야 할 때는 도망가서 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하는데 바꿔서 말하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는 도망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가 된다.
또 다른 책에서는「최상책」까지는 같은데 이것은 「비겁한 자를 비난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뉘앙스는 어디서 나왔을까?
위(魏)·오(吳)·촉한(蜀漢) 삼국의 싸움도 끝나고 천하가 진(晋)으로 통일된 지도 거의 40년이 흘러 진은 내란과 흉노의 습격으로 망하여 그 양자강 남쪽으로 옮겨갔는데 북방 황하 유역에는 북에서 또는 서에서 많은 이민족이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쑥대밭 같이 어지러워져 세력 분포도 점차 남북으로 크게 둘로 나뉘어 제각기 자기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분과 남북양조(兩朝)의 싸움이 쉴새없이 계속되게 되던 남북조 시대의 일이다.
북방에서는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위(魏)가 세력을 더해가고 남조는 제(齊)나라 시대였다. 송(宋)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順帝)는 제왕(齊王)인 소도성(蕭道成)과 왕경칙(王敬則)등의 압력으로 나라를 제(齊)에 빼앗기고 이어 살해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그 왕경칙은 반군을 이끌고 제도(齊都) 건강(建康 - 南京)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그는 회계(會稽)의 태수가 되어 있었으나 지금 황제하고는 오랫동안 싸움을 계속해서 자식들도 다 살해된 바 있었다.
그래서 아주 결정(決定)을 지어버릴 생각으로 진군 중 그는 황제측에서 퍼뜨린 왕경칙이 도망가는 모양이다라는 소문을 들었다.
왕경칙은 내뱉듯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계략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도망치는 것이 제일 좋은 책략이었다. (檀公의 36책은 도망치는 것이 상택이다). 네 놈들이야 말로 어서어서 도망치는 것이좋을거다.
이에 이어서 「이 말은 단도제(檀道濟)가 위군을 피한 것을 힐난한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고있다.
왕경칙은 이윽고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도망도 치지못하고 목이 잘렸으나 「삼십육계(三十六計)……」라는 말만은 남아 후인(後人)들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들은 단도제(檀道濟)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도제는 전대(前代)인 송(宋)을 섬긴 명장으로 송의 기반을 쌓아올린 무황제때부터 군사(軍事)를 맡고 북방의 대적인 위나라 군사와 수차에 걸쳐 싸워 공을 세워왔다. 그 무렵 위의 기세는 더욱 더 강성해져 연나라(燕) 양나라(凉)도 그 말 발굽에 망해 버렸다.
단도제는 이런 적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늘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 그는 용병법이 노련했으며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송(宋)나라 땅을 별로잃지 않고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명장 단도제의 이름은 점차 높아졌으나,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무리는 그를 모략 중상할 기회를 은근히 엿보고 있었다.
전왕(前王)의 장례식 때 참언(讒言)이 왕의 귀에 들어갔다. 전국시대의 군왕은 자기 부하 장군의 힘이 강대해지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참언은 그대로 적중되어 마침내 단도제는 잡혀왕 앞에 끌려 나와 사형이 결정되었다.
그때 그는 두건을 벗어 그것을 왕 앞에 내던지며 불길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왕을 노려보며 외쳤다.
왕이여, 이 단도제를 죽이다니 그것은 스스로 만리장성을 헐어버리는 것과 같소이다!
단도제의 죽음을 전해 듣자 위군은 춤을 추며 좋아했다. 과연 송의 원가(元嘉) 36년 겨울 위왕 불리(佛理)는 백만이란 대군을 이끌고 굳게 얼어붙은 강을 건너 송(宋)으로 침입했다.
이 철기(鐵騎) 앞에 송군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패주하고 위군은 그 뒤를 쫓아 송나라 깊숙이 쳐들어가 이르는 곳마다의 마을을 약탈하고 남자를 참살했다. 위병은 창 끝에 갓난애를 꿰들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모든 집이 불타버렸으므로 봄이 되어 돌아온 제비는 숲에다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무렵 왕은 석두성(石頭城)에 있었으나 성벽 망대에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고 긴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아아, 단도제만 있었더라면 저 호군(胡軍)에게 이렇게까지는 짓밟히지 않았을 것을」 「삼십육계 주위상책」이라 했다고 하여 비난을 받던 단도제란 이런 인물이었다.
그는 송의 지주(支柱)였었고 스스로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대한 위군과 싸워 한번은 후퇴하는 것이「상책」이었던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자기와 병력을 보전하는 것은 송을 위해 사실 필요했으리라. 도망친다고 해도 여러 모로 뜻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이 말도 성어(成語)로써 독립하여 쓰이게 되었다.
삼십육계주위상계 속 등장인물
단도제(檀道濟) : 송의 명장
왕경칙(王敬則)
2023.08.14 - [중국고전배우기] - '살신성인 殺身成仁' 뜻과 유래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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