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변폭 修飾邊幅은 중국의 명장 마원(馬援)과 공손술과 관련된 고사성어로 변폭(베나 비단의 가장자리)를 닦고 꾸민다는 뜻으로 정작 중요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고 사소한 일에만 신경쓰고 겉치레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수식변폭修飾邊幅 뜻과 한자 그리고 유래
수식변폭修飾邊幅 출처.출전.
『후한서 後漢書』 마원전 馬援傳
수식변폭 修飾邊幅 뜻과 한자
딱을 수(修) 꾸밀 식(飾) 가장자리 변(邊) 너비 폭(幅)
베나 비단의 가장자리를 닦거나 꾸민다는 뜻으로 중요한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겉치레에만 신경쓰는 것을 말한다.
수식변폭 修飾邊幅 유래
건무(建武) 4년 10월에 마원(馬援,현재 베트남 지역을 토벌한 중국의 명장)이 서주상장군 외효(西州上將軍陳岩)의 사신으로 촉(蜀)나라의 수도인 성도(成都, 청두)로 갔다. 이때는 신(新)의 왕망(王莽, 신나라 건국 황제) 말년부터 시작된 대 동란이 점차 큰 세력에 흡수되던 시기로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대폭동이나 호족(豪族)들의 군대가 합체되거나 망하면서 더 큰 동아줄로 엮이고 있었다.
당시 중원(中原)과 멀리 떨어진 중첩한 산악 너머 촉(蜀)에서는 공손술(公孫述)이란 자가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있었다. 공손술은 촉도(蜀都)의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유현군(劉玄軍)의 횡포에 분개하는 사람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이를 격파 후 파촉(巴蜀)지방을 통일했다.
파촉 지방은 상공업이 발달하고 운남 및 관동과의 무역도 발달하여 부(富)가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파촉에서 군대를 일으킨 공손술은 낙양지역에서 점차 세력을 더해가는 유수(劉秀)와 농서(隨西)지역에서 웅거하는 외효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주상장군 외효는 유수와 공손술 중 누구와 연합을 해야 할지를 탐색하기 위해 마원을 보낸 것이다.
마원은 원래 공손술과 같은 고향 출신이고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기에 공손술이 마원을 환영해 줄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공손술은 스스로 황제라 칭한지 벌써 4년이나 지나고 있었기에 마원을 바로 만나주지 않았다.
먼저 좌석을 화려하게 꾸미게 하고 백관을 좌우에 벌려 세우고 나서 자원을 안내시켰다. 한참만에 공손술은 수레를 타고 난기(鸞旗)를 휘날리면서 화려한 군사(軍士)의 호위 아래 출어(出御)했다. 층계 앞에서 수레를 내리자 점잖높은 좌석에 앉은 후 마원에게 말했다.
「마원 자네가 내 밑으로 온다면 후(侯)로 봉하여 대장군의 자리를 주겠네」
그러자 마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기를 붙잡고 만류하려는 사람들에게 내뱉듯 말했다.
「지금 천하를 누가 다스릴지는 아직 결정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천하를 취하려거든 선비(士)를 두텁게 대우해야 하고 식사중이라도 먹고 있던 것을 뱉어내고 영접해야 한다. 그런데 공손술은 소용도 없는 옷깃을 신이 나서 꾸미고있다(수식변폭 修飾邊幅). 그래서야 어찌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머물게 할수 있겠는가?」(『後漢書』 馬援傳)
여기서 변폭(邊幅)이란 포백(布帛, 베와 비단을 통칭하는 말)의 가장자리로 별볼일 없는 포(布)의 가장자리를 꾸민다는 말로 공손술의 외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꾸짖었던 것이다. 이후 불필요한 허식을 말할때 수식변폭 修飾邊幅로 표현하게 되었다.
마원은 그후 유수(劉秀)를 만난 후 그의 태도에 감탄하여 그에게 시신(侍臣)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 9년 공손술은 유수가 보낸 대군의 공격을 받아 성도에서 멸망한다.
수식변폭 修飾邊幅 속 등장 인물
마원(馬援): 현재 베트남 지역을 토벌한 중국의 명장
공손술(公孫述) : 파촉 지방에서 웅거 후 스스로 황제로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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