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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鴻鵠之志 뜻과 유래(ft. 한자, 출처)

지적허영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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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鴻鵠之志는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냐는 뜻으로 원어에서는 참새와 제비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와 같은 큰 새의 뜻을 알겠느냐는 고사성어로 진(秦)에 봉기한 진승(陳勝)이 한 말로 전해진다.

연작안지홍곡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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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鴻鵠之志 뜻과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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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는 뜻으로 일반 사람들은 영웅의 큰 뜻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鴻鵠之志 유래와 출처

출처.출전: 『사기 史記』 진섭세가 陳涉世家

 

진승(陳勝)의 자(字)는 섭(涉)이며 하남성 양무현에 살던의 밑바닥 노동자였다. 그는 어느날 문득 동료들과 함께 밭을 갈던 중 괭이를 집어 던지고는 언덕 위로 달려올라가 잠시 창연히(滄然 - 슬픈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진승(陳勝)의 가슴에는 진(秦)의 압정(壓政)에 대한 울분과 자기들의 처참한 처지에 대한 원한으로 꽉 차 있었는데 그의 가슴은 한편에는 장래의 야망도 같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한참동안 쳐다본 후 진승(陳勝)은 동료들을 돌아다보고 외쳤다.

 

「장래 내가 출세를 해도 우리 서로 잊지 않도록 하세」

 

「무슨 잠꼬대야」하고 동료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서로 피차 날품팔이 아닌가? 출세라니 그런 잠꼬대는 그만두게」

 

진승(陳勝)에게는 동료들의 그 말이 너무나 슬펐다. 그의마음이 동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는가

연작안지홍곡지지 燕雀安知鴻鵠之志: 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는 큰 기러기와 고니와 같은 큰 새의 뜻을 모른다는 뜻이다

 

이 진승은 진(秦)의 2세 황제 원년(B.C 209년) 7월에 하남성의 각 현에서 징발되어 온 9백명의 빈농(貧農)들과 함께 장성 (長城) 경비를 위해 어양(漁陽)으로 가는 도중 대택향(大澤鄕)이란 곳에서 때마침 내리는 장마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 부근은 회하(淮河)의 지류가 그물눈같이 흐르고 있는 습지대(濕地帶)로 비만 오면 곧 길이 불통이 되곤했다. 징용병들이 어양에 도착해야 할 기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는데 당시 진(秦)의 군법은 엄해서 만약 늦으면 그들은 참죄(斬罪)에 처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대택향에서 어양까지는 3천리 길로 지금 바로 강행군을 한다 해도 기일까지 도착하기에는 이미 불가능했다. 더구나 징병관(徵兵官)들은 온종일 한가하게 술만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죄를 피하는 변법(便法)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진승은 같은 징용병인 오광(吳廣)과 함께 진(秦)에 반기를 들 것을 모의했다. 오광(吳廣)의 자는 숙(叔), 양하현의 빈농으로 병사들 사이에 인망이 있었다.

 

진승과 오광은 은근히 병사들의 마음속에 불만이 쌓이게 하였으며 반항심을 부채질 하면서 또 그들의 미신을 이용하여 물고기 뱃속에 「진승이 왕이 된다」라고 붉은 글씨를 쓴 헝겊을 넣는가 하면 진영(陣營) 주위 숲 속 사당에 숨어 여우소리를 흉내내며 「대초(大楚 - 秦에게 멸망당한 그들의 祖國)가 일어나 진승이 왕이 된다」고 울음소리를 내어 농민들의 마음을 진승에게 모으는 한편 9백명의 함께 봉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때가 왔다. 오광(吳廣)이 사건을 일으켜 징병관을 화나게 한 다음 징병관이 칼을 뽑자 곧 그 칼을 빼앗아 반대로 징병관을 베어 죽이자 병사들은 혹은 겁을 먹거나 혹은 쾌재를 외치며 소란해졌다.

 

그때 진승은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호령했다.

 

「우리들의 살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들을 괴롭혀 온 진(秦)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들의 나라는 우리들의 힘으로 일으키자. 우리 백성들만이 벌레 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서 진승은 소리 높이 외쳤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느냐」

 

그러자 9백명의 농민들은 와 -하고 환성을 울려 진승의 말에 호응했다. 이리하여 대택향에서 봉기(蜂起)한 민군은 곧 근현(蘄縣)를 함락시키고 일군(一軍)은 동진하여 동성(東城)을 향했으며 진·오광의 주력군은 서진하여 진(陳)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진의 압정에서 고생을 하고 있던 각지의 농민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진승의 군에 가담했고 진(陳)에 입성할 무렵에는 그 병력이 수만에 달했다.

 

진승은 진(陳)에서 왕이라 칭하고 국호를 장초(張楚…楚를 크게한다는 뜻)라 하며 진(秦)에 대항했다. 즉 진승을 수반으로 하는 혁명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사 적으로 최초의 그리고 대규모 농민 봉기였다.

 

일의 시초를 이루는 것을 「진승 오광을 이루다(爲陳勝吳廣)」라고 하는 것은 진승과 오광이 대택향에서 일어선 그 사건에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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