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오십도를 도망가는 것이나 백보를 도망가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그 유래는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식도 아예 모르는 것과 대충 아는것은 오십보백보이니 이번 기회에 정확하게 뜻과 유래를 익혀보자.
오십보백보 五十步百步 뜻과 한자
五 다섯 오 十 열 십 步 걸음 보 百 일백 백
오십보백보 五十步百步 유래와 출처
출처.출저: 『맹자 孟子』 양혜왕편 梁惠王篇
맹자(孟子)는 기원전 371년에 출생했다는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기원 전 5~3세기 동안 계속된 전국시대의 극성기인 4세기 중엽에 살았던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난맥(亂脈)한 세상에서 인도주의적인 공자의 가르침을 펴고 인의의 도(仁義之道)를 말하며 다니던 맹자가 당시 사람들 눈에는 상당히 괴이한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더구나 맹자는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남에게 자설(自說)을 말할 때에는 그의 말투는 안하무인격이었고 또 그만큼 기백이 담긴 날카로운 변설을 전개했다.
당시의 사상가나 책략가들은 여러 나라 왕을 상대로 유세하고 다녔는데 맹자도 역시 많은 왕과 만나 유세를 했는데 아래 내용은 위(魏)나라의 왕인 혜왕(惠王)에게 초청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다.
혜왕은 수도를 양(梁 - 개봉 開封)에 옮겼으므로 양혜왕이라고도 불린다.
위나라는 당시 서쪽으로는 호랑(虎狼)이라는 별명이 붙은 무서운 진(秦)에게 압박되고(실은 이 압박에 견디지 못해 동쪽인 양(梁)으로 천도한 것이다) 있었으며 또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는 계속 대패(大敗)하여 역경(逆境)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혜왕(惠王)은 이름있는 현사(賢士)나 일재(逸才)를 불러 의견을 듣고 또는 채용을 하는 등 국운 만회에 노력하고 있기에 맹자도 그렇게 해서 초빙된 것이다.
혜왕이 말했다.
「선생이시어,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와 주신 것은 다름 아닌 내 나라를 강하게 해 주시겠다는 뜻에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의 나라가 강해지거나 말거나 그런 것은 뒤로 밀고 나는 인(仁)과 의(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왔읍니다.」
『맹자(孟子)』 첫머리에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 되었으며 이야기는 진전되어 여러 가지 점에 미친다. 맹자는 거기에 잠시 체재(잠시 머둘다)했다.
혜왕은 자기의 기대와는 빗나갔으나 그래도 맹자의 이야기이므로 꾹 참고 들었다.
어느 날 혜왕이 말했다.
「선생이시어, 당신의 백성을 생각하라는 가르침. 변변치 못한 저이오나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내나라 하내지방(河內地方)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젊은 사람들은 하동지방(河東地方)에 이주 시키고 남을 노유자들에게는 하동의 곡식을 운반해다 먹이고, 그 반대로 하동지방에 기근이 들었을 때는 젊은 사람들을 하내로 이주시키고 하내의 곡식을 하동으로 운반하는 등 극력 애를 쓰고 있으읍니다만 백성들은 나를 따라 모여들지를 않습니다. 이웃의 백성은 여전히 수가 줄지 않고 우리나라 백성은 수가 늘지도 않습니다. 백성을 생각하라는 선생님의 생각으로 볼 때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죠. 비유해서 말을 해 보겠읍니다. 전장(戰場)에서 서로 격전을 벌리고자 개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고 합시다. 백병전이 전개되었읍니다. 하나 어느 병사는 아주 겁을 먹으며 갑옷 투구를 벗어 던지고 창을 끌면서 정신 없이 도망을 쳤읍니다. 그리하여 백보 쯤 가서 섰습니다. 그러자 또 한명 도망친 자가 있어 이 놈은 50보에서 머물러 백보를 도망친 놈에게 『겁장이』라고 하며 비웃었다고 합시다. 어떻습니까?왕이시여……」
혜왕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바보 같은 짓이지. 50보나 백보나 도망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맹자가 말했다.
「그것을 아신다면, 왕이시어 인접 국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왕의 희망도 이것하고 비슷한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해서 맹자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요점의 중심으로 혜왕을 끌고 갔다. 그 중심이란 맹자의 사상체계의 중핵(中核)을 이루는 왕도(王道) 즉 왕자의 길이다.
이 왕도하고 정면으로 부닥치면 이야기가 지루해진다. 그래서 맹자는 왕이 가장 좋아하는 전쟁 이야기를 꺼내어 흥미를 갖게 한 것이다.
원문에서는 오십보로써 백보를 비웃으면 곧 어떠한가(以五十步 笑百步則何如)하고 묻는데 대해 혜왕은 「불가하다. 다만 백보가 되지 않을 뿐 이 역시 달아난 것이다(不可直不百步耳是亦走也)하고 대답했다.
인접국의 정치나 왕의 정치나 맹자의 왕도(王道)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혜왕이 백성을 생각한다해도 오십보 백보의 차이로 결국은 같은 것이었다.
왕도란 평소부터 백성의 생활안정을 꾀하고 그 안정 위에 쌓아올려지고 백성을 주인으로 하여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애정과 예의에 찬 도덕국가로 교육이 보편화된 문화국가를 목적하는 것이지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목적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강대여부는 왕도로서 관심 밖의 일이었다.
2023.09.01 - [중국고전배우기] - 오리무중 五里霧中 뜻과 유래(ft. 한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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