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골수 怨徹骨髓는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오왕 부차(吳王夫差)가 월왕 구천(越王句踐)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 원한은 앞으로 10년 동안을 낮도 씻지 않고 목욕을 하지 않아도 골수에 사모쳐 잊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원철골수 怨徹骨髓 뜻과 한자
怨 원망할 원 徹 통할 철 骨 뼈 골 髓 뼛골 수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매우 깊어 절대 잊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원철골수 怨徹骨髓 출처와 유래
출처.출전: 『한서 漢書』 오왕비열전 吳王濞列傳
주(周)나라의 천하가 어지러워져 세상은 춘추시대가 되었을 때 진(秦)의 목공(繆公)은 명신(名臣)인 백리혜(百里傒)와 건숙(蹇叔)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차근 차근 힘을 키워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하나가 되었다.
진(秦) 목공은 진(晋)을 도와 그 옆에 있는 정(鄭)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백리혜(百里傒)와 건숙(蹇叔)이 입을 모아 그 무모함을 간했으므로 우선은 그 충언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鄭)나라 정복을 단념할 수 없었던 목공은 수년이 지나서 마침내 군사를 일으켰다. 진병(秦兵)은 동으로 진군하여 진(晉)의 일부를 지나 주(周)의 북문(北門)에 접어들었다.
그 무렵 정(鄭)나라 상인인 현고(弦高)라는 사람이 소를 팔기위해 주나라에 당도해 있었는데 진격해 오는 진의 군사에게 잡힌다면 큰일이고 그렇다고 고국(故國)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진군(秦軍)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 한번 선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끌고 온 소를 모두 진군(秦軍)에게 헌납했다.
「정(鄭)나라 임금은 대국인 진(秦)이 우리나라를 응징하시려고 벼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진군(秦軍)의 장병을 위로하기 위해 12마리의 소를 진군(秦軍)에 보내라고 명령했사오니 부디 받아 주십시요.」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진군(秦軍) 대장은 이마를 맞대고 의논했다.
「정(鄭)나라 놈들, 제법 눈치가 빠르군. 우리의 작전을 눈치 챈 이상 정나라 토벌은 그만두고 진(晋)의 일부인 활(滑)을 빼앗는 편이 좋겠다」
진군(秦軍)은 거센 물결 모양 활(滑)로 침입했다.
당시 진(晉)나라에서는 오패의 한 사람이었던 문공(文公)이 사망하고 아직 그 장사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던 때 이므로 황태자인 이오(夷吾 - 양공 襄公)는 격노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진(秦)이구나. 내가 아버지를 잃고 난처해 있는 틈을 타 우리 영지를 침범하다니」
이오(夷吾 - 양공 襄公)는 바로 용장을 파견해서 진군(秦軍)을 철저하게 때려부셨다. 진군은 대패하여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원이 전사 또는 포로로 잡혔다.
세 사람의 대장도 물론 잡혀 양공(襄公)앞에 끌려나왔다. 그런데 문공(文公)의 부인 즉 양공의 어머니는 진(秦)나라 목공의 딸이었으므로 곧 양공에게로 가서 세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청했다.
「저 세 사람을 죽여서는 안돼요. 싸움에 패한 이 세 사람에 대해 목공의 원망은 골수에 박혀있을 것이다. 그러니 세 사람을 진으로 돌려보내고 목공께서 하시고 싶으신대로 버려 둬라」
양공도 과연 옳다 싶어 세 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목공은 성 밖까지 나와 세 사람을 맞이한 후 세 사람을 보자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정나라를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두 명신(名臣)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꼴이 된 것이다. 그대들 세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목공은 이 세 사람을 벌 주지 않고 더욱더 중용(重用)했다(『사기 史記』 秦本記)
이「원입골수(怨入骨髓)」에서「원철골수(怨徹骨髓)」라는 말이 생겼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춘추 전국시대에 오(吳)와 월(越)은 숙명적인 구적(仇敵)으로서 싸우고 있었다. 그 몇번째인가의 싸움에서 아버지를 살해 당한 오왕 부차(吳王夫差)는 이를 갈면서 분해했다.
「이놈, 월왕 구천(越王句踐)아. 아버지를 살해당한 원한은 앞으로 10년 동안을 낮도 씻지 않고 목욕을 하지 않아도 골수에 사모쳐 잊지 않겠다. 잊지마라 구천아. 반드시 이 원수는 갚고 말테니까…」 말은 또『漢書』의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에도 보이나 이「원입골수(怨入骨髓)」에서 「원철골수(怨徹骨髓)」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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