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강의에서 우리는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를 나누어 탐구 했습니다. 현실 세계는 바로 이데아 세계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의 세계 그리고 그 관념 안에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현실로 외화 시켜 놓은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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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 [철학] - 플라톤: 이데아란 무엇인가
플라톤, '동굴의 비유'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존재하는 그 유래(근원)는 바로 인간의 관념 즉 이데아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이데아로부터 유출된 것이거나 이데아를 외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데아 세계 >> 현실 세계 >> 예술 세계
플라톤은 1)이데아의 세계와 2)이데아를 실현해 놓은 현실 세계 그리고 3)그 현실을 또 다시 모방해서 만들어낸 예술의 세계라는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진리란 무엇이며 그 진리들의 위계는 어떻게 성립되는 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데아의 세계는 인간의 고향이다
"이데아의 세계는 오로지 인간의 이성만으로 알 수 있는 세계이며 그것은 원래 인간의 영혼이 살던 고향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데아의 세계는 우리가 이성을 통해서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들어 대학생의 이데아를 한 번 생각해볼까요? 대학생의 이데아!
대학생하면 떠오르는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 한 마디로 대학생의 진리가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를 것 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속에는 아주 특수한 어떤 학생(민수와 같은 개별자)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중에 학생, 학생의 개념, 학생의 가장 이상적인 형상, 학생의 진리, 가장 모범적인 전형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생의 이데아입니다.
그런 이데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이데아와 자신의 모습을 한 번 견주어 봅시다. 어떻습니까? 진정한 실재인 이데아와 나의 모습은 얼마나 가깝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 이데아와 내 모습이 아주 가깝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사실(실재)에 가까이 있다는 의미에서 근사(近似)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데아를 가지고 좋음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 입니다. 인간은 원래 육체를 가지지 않고 이 영혼의 세계속에, 이데아 세계속에 살다가 그 세계에서 죄를 지어서 이 육체의 세계, 현실의 세계로 추방을 당해서 이 세계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의 신화적 설명 방식에 따르면 이데아 세계에 살다가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에 하나의 강을 건너게 됩니다. 그 강의 이름이 레테의 강입니다. 레테는 망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이데아 세계에 살다가 현실로 내려오면서 이 망각의 강을 건너게 되고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 오면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 강물을 마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려 왔더니 그 이데아 세계 속에 살았던 모든 기억들이 잊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레테의 강 이라는 신화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레테의 강을 건너 오면서 그 강물을 마시면서 사람들을 이데아 세계에 살았던 모든 기억을 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어로 진리는 알레테이아(Aletheia) 입니다. 레테가 망각이라면 그 망각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진리라는 뜻입니다.
교육이란 망각한 이데아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이런 망각된 이데아를 다시 떠올리도록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그의 교육론을 우리는 상기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교육은 새로운 지식을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가 알고 있었으나 잊어버렸던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내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 입니다. 즉 진리는 어떤 우리의 이성적인 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경험을 통해서 외부의 지식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무엇이 진정한 우정인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무엇이 진정한 국가인가? 진정한 학문은 무엇인가? 라는 이런 철학적인 물음(본질 물음)들을 사실 던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보면 감동할 줄 알고 진정한 우정 앞에서 감동할 줄 알고 진정한 학문 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본질 등을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금 태어난 어린 아이도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기본적인 구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아름다움의 본질인 이데아를 아이들이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재적으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 교육은 외부에서 어떤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 안에 있으나 망각하고 있는 이데아를 상기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데아란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뜻하는 이상적인 형상, 이상적인 이미지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그것을 개념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미지라 부르기도 하고 형상이라 부르기도 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긴 하지만 의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우정하면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 이런 것들을 플라톤은 형상이라고 불렀던 것 입니다.
형상이란 말 이데아란 말은 실제로 그냥 생김새, 모양새, 꼴 이런 것들을 나타내는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개념과 이념 등 복잡하게 이야기 하지만 그냥 우리 머리속에 떠오르는 Re-presentation 어떤 표상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이런 대상의 이데아를 떠올리는데 가장 도움을 주는 학문은 바로 수학과 기하학과 화성학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수학 기하학 화성학은 철저히 이성적인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 내는 연역적인 학문입니다.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활동을 통해서 누구나 수학적 진리에 이를수 있는 겁니다. 수학적인 조화와 균형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배움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 이성적 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학문은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다고 플라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하나의 교육기관 인류 최초의 어떤 교육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아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플라톤은 그 정문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수학과 기하학을 모르는 자 여기에 들어오지 말라!
이데아를 발견하는 방법은 대화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바로 대화에서 찾았습니다. 이 대화법은 플라톤이 수행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소크라테스의 교육방식 입니다. 실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작을 남기지 않고 소크라테스에 관련한 모든 기록은 플라톤 저자 안에 등장하는 바로 스승 소크라테스는 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는 것 입니다. 플라톤의 저작 내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에게 진리를 일깨워 주는데 그 방법이 바로 대화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문답법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일상적인 인식 아니면 그저 단순한 신념이나 확신 또는 편견 이런 것들로부터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비판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들의 앎이 틀렸구나. 내가 생각한 것이 엉터리구나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교정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질문을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생각에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해 줌으로써 스스로 진리로 고양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비판적 질문과 적극적 경청이라는 두 가지 활동으로 이루고 나갔습니다. 잘 들었다가 그 사람의 입장에 그 사람의 생각의 한계를 아주 조심스럽게 지적해 줍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방법 스스로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이러한 방식을 대화법이라고 이야기했고 무지를 자각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방법을 우리는 보통 산파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산파는 아이를 낳을 때 그 아이를 쉽게 출산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할머니를 이야기합니다. 그 할머니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리를 산출해 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진리를 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산파 입니다.
그래서 철학자가 타인들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는 방법은 마치 아이를 낳도록 스스로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는 산파의 역할과 같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 진리인 이데아를 발견하는 방법으로써 대화와 산파술을 이야기 했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우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육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진리라든가 아니면 인생의 정답 같은 것들을 깊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방식,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식 그것을 본 떠 살아가는 그런 우상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동굴의 우상 입니다. 동굴의 우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동굴 바깥 진짜 세계를 보지 못하고 동굴의 벽면에 비친 세상의 그림자를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실제 세계가 햇빛에 의해서 비추어진 동굴의 벽면에 비추어진 그런 그림자를 실제 세계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의 역할이란 것은 무엇이냐? 그들이 저런 우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저런 죄수들을 진정한 세계로 바깥의 실제 세계로 데리고 나가는 것 그들에게 진짜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자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진짜를 보아야만 합니까?
플라톤은 이야기합니다. 플라톤 철학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은 우리는 진리를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진리는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활동은 바로 그러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를 왜 일깨워야만 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의 어떤 관념의 표현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념이 이상적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도 이상적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특히나 젊은 시절에 우리가 세상에 길들여져서 세상에 가치들이 모든 것이 다 그리고 세상에 묵묵히 길들여 나가는 것이 어떤 출세의 지름길이다 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구원의 어떤 영역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거짓된 것 세상의 것을 진짜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청년들이 모여 있는 세계는 더 이상 진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보다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위대한 영웅들은 자신의 관념 속에 있는 세계를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세계는 바로 그런 위대한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철학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왜 철학해야 하는가? 철학이라는 건 바로 그러한 이데아의 세계 진짜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세계 인가를 탐구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탐구해야 하는 이유를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마음이 현실을 만든다
마음을 바꾸어야 현실을 바꿀 수 있다
By 플라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은 인류 최초의 관념론자인 것 같습니다. 관념론자는 이 우리의 생각이 이 세상을 바꾼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념을 튼튼하게 만든 것, 우리의 관념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진리를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그러한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세계를 만드는 근본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철학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진리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진리를 본 청년들은 진리를 살아갈 것이고 그 진리를 살아 감으로써 이 세계는 진리의 조금 더 가깝게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출처: 정진우의 철학교실: 위 글은 유뷰브 강좌를 시청 후 공부 목적으로 기록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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