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공부하기 2편

지적허영 2023. 4. 8.
반응형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서문(序文) 중

(단순한) 신뢰를 바탕으로 받아들여진 원리들, 부분들 간의 정합성(整合性) compatibility과 전체적인 명증성(明證性)이 결여된 원리들로부터 어설프게 유추된 결론들, 이런 것을 우리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체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디에서든) 논란거리가 아닌 것이 없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상반되는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이 없다. 가장 하잘것없는 문제에서도 우리는 논쟁을 피할 수 없고,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도 우리는 전혀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인간에 관한 학문은 다른 학문을 위한 유일하고 견실(堅實)한 기초이므로, 우리가 인간학 자체에 제공하는 기초는 (가장 확실한) 경험과 관찰 위에 놓여야만 한다. 나는 외부 물체의 본질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본질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경험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 신체 + 정신(= 정념 + 오성)

'오성(悟性).정념(情念).도덕' 세 부분으로 구성된 흄의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위해, 우선 흄이 사용하는 용어들의 개념 정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흄도 이분법(二分法)적 구분을 사용합니다. 첫째로 인간은 신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신은 (신체를 통한) 감각 작용인 정념(情念)[느낌] passion과 사고(思考)작용인 오성(悟性)[이해력] understanding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정념은 외부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으로, '쾌락-고통⋅좋음[선호]싫음[기피]⋅아름다움-추함' 등과 관련된 희로애락(喜怒哀樂) 같은 감정을 뜻합니다. 따라서 정념은 '감정(感情) emotion⋅정서(情緖) affection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고, '욕망[욕구]⋅의지⋅목표[목적]⋅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관성 있게 끝까지 '정념'이라는 어려운 용어 사용을 유지했다면, 어쩔 수 없었겠거니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 정작 본문에서는 '정념'과 '감정⋅정서⋅느낌⋅소감(所感)' 등을 혼용(混用)합니다. 

오성 = 이성 + 상상력(연상력)

지적 활동이기도 한 오성은 (분석과 판단작용을 통해) 복합지각[관념]을 단순지각[인상]으로 분해하는 능력인 이성(理性) reason과 (그와는 반대로 그렇게 분해된) 단순지각들을 새로운 내용의 복합지각[관념]으로 재결합하는 능력인 상상력[연상(聯想)작용] imagina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성은 관념간의 관계 또는 외부 대상과 사실과의 일치 및 불일치를 따져 참이나 거짓을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상력'이 일반적인 의미의 '상상력'과 충돌을 일으킬 게 뻔함을 알면서도 새로운 어휘를 만들지 않은 건, 계속해서 상상력의 의미를 수정하느라 고생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흄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든 상상력이든 모두 지각(知覺) perception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지각이란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대상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어떤 이미지[표상(表象)]를 갖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좋았을 것을, 흄은 지각의 정의(定義) 중 앞부분을 1차적이고 직접적이며 생생하고 단순하며 상대적으로 짧게 지속하는 인상(印象) impression으로 그리고 뒷부분을 2차적이고 간접적이며 희미하고 복합적이며 상대적으로 길게 지속하는 관념(觀念) idea으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구분해야만 논의(論議)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흄은 인상에서 관념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념이 다시 인상을 남기며, 그 인상에서 또 새로운 관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무한히 지속한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흄은 오성을 '이성⋅상상력⋅지성(知性)[사고력] intelligence⋅정신' 등과도 혼용합니다. 쉽게 말해서 인상은 외부 대상이 정신에 남기는 ‘흔적(痕迹)’이고, 관념은 그 흔적을 조금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진으로 현상한 ‘이미지’ 또는 ‘생각’인데, 흔적이든 이미지이든 모두 ‘지각’이며, ‘정신’을 ‘정념’을 포함한 ‘지각(知覺)’ 그 자체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동시에 '정념'을 제외한 오성이나 이성만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칸트: 오성은 입법하고, 이성은 지도하며, 판단력은 적용한다

이왕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김에, 흄보다 14년 후에 태어나 우리를 더 괴롭히는 칸트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규칙의 능력오성(悟性)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현상들을 이론적으로 입법[통합]하는 사고 능력이고, 원리의 능력인 이성(理性)은 오성이 만든 규칙들을 자신의 원리 아래로 포용하는 지도(指導) 능력이며, 판단력(判斷力)은 두 능력을 매개하면서 이성의 원리가 오성의 규칙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결과 “오성은 입법하고, 이성은 지도하며, 판단력은 적용한다.”라는 멋진 문장을 남겼죠. 그러나 정의(定義)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성과 이성의 구분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규칙과 원리’ 그리고 ‘통합하는 능력과 포용하는 능력’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안다고 해도 그런 구분이 필요한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다만 판단력은, 판단과 선택과 관련된 개념이라고 제가 몇 번 언급했던 ‘지혜(知慧)’와 비슷해 보입니다.

흄의 기존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

흄은 당대의 자연과학이 구축한 방법론을 자신의 학문 체계에 적용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고, 후자(後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고집한다. 유명하다는 철학자들조차 확실하지도 않은 영혼이나 신 또는 불변의 실체(實體)와 같은 개념들 위에 사상누각(沙上樓閣)을 건설하고선 대단한 일을 한 듯 자랑하지만, 그들이 떠받들어지는 이유는 그 이론의 단단함[엄밀함]이 아니라 그저 말을 잘해서 아니면 아예 자신도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들을 뒤섞어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말이나 글솜 씨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2023.04.07 - [철학] -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공부하기 1편

반응형

댓글

💲 흥미로운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