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가옥(屋上架屋) 옥하가옥(屋下架屋)은 집 위에 또 다른 집을 세우는 것처럼 무 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오래 전 과거에는 집 위에 또 다른 집을 올리는 것이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집 위에 집을 올리는 고층빌딩이 즐비하니 뜻도 변해야 할까?
옥상가옥(屋上架屋) 옥하가옥(屋下架屋) 뜻과 유래(ft, 한자, 출처)
옥상가옥(屋上架屋) 옥하가옥(屋下架屋) 뜻과 한자
屋 집 옥 上 윗 상 架 시렁 가
지붕 위에 다시 집을 세우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옥상가옥(屋上架屋) 옥하가옥(屋下架屋) 유래와 출처
출처.출전: 『세설신어 世說新語』
후한(後漢)말의 난세로 소위 삼국시대에 촉(蜀)나라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위(魏)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자 국호를 진(晋 - 西晋)이라 고친 후 수도를 낙양(洛陽)으로 옮겼다.
한편 멸망은 당했으나 오(吳)나의의 옛 도읍지였던 건업 建業(揚都…南京)은 양자강 기슭에 자리잡고 뒤로는 산이 둘려있어 풍광명미한 도성으로 여전히 강남의 중심지였다.
그 절 낙양에 유중(庾仲)이란 시인이 있어 현란한 양도(揚都)의 번화함과 풍경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32경 43도 三二京、四三都」라는 글귀가 있고 그 표현이 특히 뛰어났다고 하여 평판이 높았다.
그래서 도읍 사람들은 모두 앞을 다투어가며 이 시를 베껴 벽에 붙여놓고 감상했기에 종이가 부족하게 되어 「낙양의 종이 값이올랐다」는 낙양지가귀란 고사성어까지 만들이지는 상황을 빚었다.
그러나 이 시를 본 사태부(謝太傅 - 太傅란 太師、太保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3공 중 하나)라는 한 고관이 비웃으며 말했다.
「저 시(詩)는 마치 지붕 밑에 또 다른 지붕을 만든 것(옥하가옥 屋下架屋) 같이 똑같은 소리를 반복한데 지나지 않는구나. 저정도 수준의 시를 가지고 찬양하는 놈들의 심사(心事)를 모르겠다」(세설신어 世說新語)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로 북제(北齊 - 南北朝時代의 北朝의 一國)의 안지추(顔之推)라는 학자가 지은 『안씨가훈(顔氏家訓)』이란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진(晋)이래 훈고학(訓話學)이란 유학(儒學)을 연구하는 방법이 정해진 후 학자들은 서로 다투어 옛 학자들의 저술한 책을 현대문으로 고쳐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이 쓰고 있는 것은 모두 그 이론을 세우는 방법이 중복되어 같은 것을 반복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마치 지붕 밑에 지붕을 세우고 마루 위에 다시 마루를 까는 것과 같다. 헛된 노작(勞作) 뿐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상과 같이 원전(原典)에는 다 「옥하가옥 屋下架屋」으로 되어 있으나, 오늘날에는 보통「옥상가옥 屋上架屋」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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